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정크: 쓸모없는 물건, 폐물, 쓰레기

제목의 정의는 이러했다.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여성성을 지향하는 사람인 보텀(bottom]인 성재는

치과의사인 민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민수는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유부남이 되었다.

몇번의 이별을 했지만 결국 부메랑처럼 다시 민수에게 향하는 성재.

일주일에 두번 정도만 찾아오는 아버지와 노래방 도우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이른 바 첩의 자식인 성재는 화장품 판매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꾼다.

하지만 빽도 없고 스펙도 부족한 그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없다.

 

 

술도 좋아하지 않고 유일하게 화장을 하는 것을 즐기는 성재는 자신의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감춰야 안심이 된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동성애자라서?

아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와 구토를 하는 도우미 엄마를 두어서?

이태원 골목에 자리잡은 동성애자 클럽을 찾아 물뽕을 하고 충무로 극장의 어둠속에서

낯선 남자들과 섹스를 하는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내 얼굴은 자꾸만 결연해졌고, 단단해졌고, 두꺼워졌다.

화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조금쯤 더, 나를 보여줄 수 있었고, 똑바로 설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164p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따끔한 훈계나 손가락질이 아니었다. 그것이 설사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진자 사실을 덮어 버리는 가짜 위안이 좋았다.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고 잘되지 않았지만

그저 괜찮다고, 참 잘됐다고 말해 주는 거짓말, 그 진심 어린 거짓말이 필요했다.' -94p

 

여린 사람이었다. 성재는.

랏슈를 흡입하고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수음을 해야하는 몸뚱이를 지녔지만 그는 진정으로 살고 싶어했다.

정말로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현실과 더럽고 구질구질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리긴 하지만 진심으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

허리띠를 풀어 목을 메는 순간에 그는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이미 현실을 피해 죽어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긴 하지만

그저 제대로 된 가정에서 태어나 엄마와 아버지가 같이 사는 그런 소망을 가졌던 미숙아였다.

 

읽는내내 바닷물을 마셔 더 애타는 목마름을 느끼는 것처럼 목이 말랐다.

몸과는 다른 성을 지녀야하는 성재의 뒤를 쫒다보면 외로움이 확 밀려들어왔다.

선택하지 못한 삶이었는데 그가 짊어진 굴레가 너무 무거웠다.

그저 위장된 삶을 살기로 결정한 성재의 남자 민수역시 화려한 치장속에 숨겨진 곰팡이처럼 어두웠다.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마이너이고 이들은 루저일까.

'정크'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아니, 그들에게 '정크'라는 낙인을 새긴 것은 세상이었다.

여전히 이태원과 서빙고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을 수많은 '성재'들의 이 꼬리표를 떼어줘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어둠속에 서식하는 아픈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작가의 역량이 놀랍게 다가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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