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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평점 :
바람도 없이 잎이 지는 것은 지구 반대편 어느곳에서 누군가 울고 있는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섬을 스치는 광폭한 바람이 누군가의 간절한 그리움이라면 그야말로 메가톤급
그리움일 것이다.
간질 간질한 제목처럼 간질 간질한 그리움들이 묻어나는 아포리즘들이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처럼 이 시인은 늘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첫사랑을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그를 스친 많은 사람들 중에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언제 어느 때든 그게 바로 첫사랑이라고.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3/pimg_711577196812297.jpg)
연어로 유명해진 시인은 물고기의 삶이 궁금하여 집안 어항에 물고기들을 길렀단다.
하지만 오는 동안 죽기도 하고 기르는 동안 죽기도 하여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다는데..
어느 날 문득 아들의 말처럼 내가 물고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나를 보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물론 그 녀석들의 시력이 뛰어나다면 충분히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쩝쩝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모습이며 하품을 하거나 끄덕 끄덕 조는 모습까지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문득 내가 보는 것이 다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가치가 있든 없든 누군가...생명이 있는 뭔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오히려 CCTV라는 기계앞에 옷깃을 여미게 되면서도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절대적인 어떤 것들이
우리를 지켜본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까.
손주가 남긴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어머니는 유독 당신 아들 앞에 맛있는 반찬을 갖다 놓으려고 하고
아내는 그걸 보고 샐쭉 토라졌다가는 여섯 살 난 아들 앞으로 반찬을 슬쩍 옮긴다. 고추 달린 아들 둘을 앞에
두고 어머니와 아내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119p
시인의 집 풍경인지 여느 집의 풍경인지 거의 비슷한 모양새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늘 자신에게는 인색하고 자식에게는 퍼주기만 하는 어머니와 깍쟁이 같고 여우같은 아내의 모습을 그린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나는 아직 어머니쪽보다는 아내쪽에 가까운 듯하여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무안스럽기도 하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3/pimg_711577196812296.jpg)
나도 한 때 섬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아니 바다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마음이 울적해질라치면 바다로 뛰어가 몇날 며칠 도시를 잊고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섬에 들어와 살다보니 '제발 폭풍이라도 불어서 배가 뜨지 못했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이 끔찍하게 들린다.
이 삼일 걸러 주의보가 떨어지고 수시로 뱃길이 끊겨 그야말로 고립된 '섬'이 되어버리면
저절로 자신이 '섬'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정말 행복하기만 한 일인지..유독 추운 이 겨울 섬으로 들어앉혀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차피 동경일 때는 아름답지만 현실일때는 냉혹하다는 걸..
시인이여..이 곳은 거문도라는 섬이요. 동백꽃이 몽울이 지는 이 계절에 꼭 한번
들어오소. 글처럼 아름답기만 한 일은 아니외다.
'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며칠은 느낄 것이외다.
문을 열기도 전에 소리만으로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 섬의 칼바람도
분명 어디선가 나를 보고싶어하는 이의 간절한 사랑일 것이라고 나는 아이처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