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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면 - 사람을 읽다, 책을 읽다
설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이렇게도 들여다 볼 수 있다니.
내가 책이 되고 혹은 저자가 되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는 이야기이다.
책의 이면(裏面)이라 함은 책의 속, 내부의 깊은 면이란 뜻으로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을 썼을 당시의 저자의 상황이나 시대의 흐름등을 독자의 입장이 아닌 책의 입장으로
풀어 쓴 아주 독특한 내용이다.
중종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조광조는 화려한 등장과는 무색하게 빠른 몰락을 맞고 만다.
그것도 지극하게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군주에 의해 사사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조광조는 한창 임금과의 사이가 좋았던 어느 날 '근사록'은 학문에 가장 긴요한 것으로
궁리하는 학문이 없으면 묘리를 탐구하지 못하니 열과 성을 다하라는 조금은 오만한 조언을
하기에 이른다.
'근사록'은 성리학의 입문서로 일상 생활에 절실한 사실을 묻고 생각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나의 문제부터 출발하여 깊은 이치에 이르도록 한다는 말이다.
결국 왕에게 자신의 문제부터 돌아보라는 무엄한 조언을 한 셈이니 '근사록'은 불과 1년 후 목숨으로
그 댓가를 치르게 한 조언의 씨앗이 된 셈이다.

유자(儒者)였던 심노숭은 아내와 아이을 잃고 참담한 슬픔을 가눌 수 없어 제문을 지어
올리며 삶을 힘겹게 버틴다. 전생의 업이 무엇이길래 인과가 무엇이길래..하는 하소연은
유자에게는 부끄러운 노릇일지 모르나 음심에 빠진 아난을 음욕의 현장에서 꺼낸 세존이
길고 긴 설법을 폭포수처럼 뿜어낸 결과물인 '능엄경'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던가.
'열하일기'를 앞에 놓고 패관기서라고 윽박지르는 박남수를 말리는 박제가와 이덕무의
모습과 한잔 술과 거문고 줄로 한숨을 삭이는 남공철의 얼굴이 겹쳐진다.
스물 일곱의 어여쁜 나이에 명을 놓아버린 난설헌을 못잊어 자신도 스물 일곱의 나이에
그네를 쫒아 이생을 떠나겠다는 허경란의 눈물방울이 '난설헌시집'위에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다.
박제가가 쓴 '북학의'와 한교의 '무예도보통지'에서는 서얼임에도 뛰어난 재능으로 인정받고
세상에 나왔으나 사람들의 멸시를 견디었던 설움이 전해져 온다. 도대체 권력자들이란 뒷방 늙은이들처럼
궁시렁거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오랑캐에게 노략질 당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불쌍한 백성을 위해
필력을 세웠던 이들보다 나았던 것이 무엇인가.
김시습의 '매월당집', 조부가 손자 양육 과정을 기록한 이문건의 '양아록'등 귀에 익었던 책들을
이렇게 만나니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돌아가 종이위에 붓을 놀리고 있는 주인공들을 만나고 온
느낌이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노라니 세월무상이요,
당시에 뜨거웠던 주인공들은 사라졌으나 이렇듯 책은 남아 당시를 증언하니 어찌 책이 귀하지 않을 것인가.
한 권의 책에 담긴 기막힌 이야기와 역사가 한 걸음에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