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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바리공주는 오귀대왕과 길대부인의 일곱번째 딸로 태어났지만 아들을 바랬던 왕의 명령으로
버려지게 된다. 바리공주가 열 다섯살이 되었을 때 오귀대왕이 병에 걸리고 바리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서천 서역국으로 달려가 약물을 구해와 아비를 살리게 된다.
버려진 아이 '바리'
동해의 어느 마을에서 연탄공장 사장네에 일곱번째 딸로 태어난 바리는 제몸으로 생명을 잉태시키지
못했던 산파에게 넘겨져 인천의 수인곡물시장곁에서 키워지게 된다.
고향 친구사이인 산파와 토끼는 평생 자신의 아이를 가지지 못한 몸으로 '바리'를 자신의 아이인양
정성껏 키운다. 섬세하고 차분한 토끼와 저만의 방식으로 거칠게 키우는 산파는 때로를 으르렁
거리지만 두 사람의 사랑으로 바리는 열 다섯 살이 된다.
몸을 팔고 사는 옐로 하우스의 유리들의 뒷수발을 들어주며 약초를 팔아 살아가던 산파는 암에 걸려
바리에게 편안한 죽음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하고 결국 바리는 독초로 산파를 인도하게 된다.
열 여섯살이 되어 토끼에게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알게된 바리는 고향으로 향하지만 상처만 안고
되돌아오게 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바리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어눌하지만 영혼은 맑고 순수하다.
'바리공주'의 설화처럼 무속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바리는 죽음이 닥친 인간들을 편안한 저승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게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청하와 결혼하게 된다.

'바리'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픔을 지니고 사는 인물들이다.
지은 죄도 없이 평생 감방에서 썩고 있는 아버지와 자신을 할머니에게 던져두고 떠난 어미를 둔 '청하'
멀리 서해바다 건너 어미를 그리다 참깨자루에 숨어들어 인천에 들어온 '나나진'
사랑을 믿었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나나진의 어미 '화얌'
제 동생들을 먹이고 살리기 위해 제 몸하나 희생하여 유리가 되었지만 결국 바리에게 저승길로 인도된
'연슬언니', 그리고 스스로 연탄가스를 마시고 자살한 '청하사할머니'
이제 더 이상 철로위를 달리지 못하는 수인선의 궤도에는 아픔을 간직한 인물들의 과거가 새겨져있다.
손님이 끊겨버린 수인곡물시장과 수인선의 낡은 협궤처험 '바리'와 비극의 인물들은 그렇게 잊혀질 것이다.
구정물같은 세상에 불알하나 달지 못해 버려졌던 '바리'는 '청하'의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태워버렸던 독초를 다시 만들 꿈을 꾼다.
숨을 틔울 '샘물'을 찾아 나섰던 '바리'는 이제 숨을 끊을 '독초'를 찾아나설 것이다.
쇠락한 시장풍경과 녹슨 기찻길의 흔적을 기억하는 작가는 분명 그 일대를 잘 아는 인물일텐데..
온갖 약초를 법제하고 간수하는 일들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있을까.
지긋 지긋한 현실이 바로 설화속의 서천 서역국이고 제 아비를 살리겠다고 시련을 견뎠던 '바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이 서글프다.
산파할멈이 약초를 찾아 온 산을 헤매였던 것처럼 작가도 꽤나 힘들게 캐고 말리고 법제시킨 공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