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임에 특효가 있다는 유명 온천장에 근무하는 간호사 루제나는 어느 날 임신한 것을 알게된다.

불임녀들이 득실거리는 소도시에서 제대로 된 남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 곳에서 임신이라니...

주변의 동료들은 호기심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드디어 도시를 탈출할 수있는 기회를 잡은 루제나에게

축하를 보낸다. 아기의 아빠는 두달 전 이 도시에 공연을 왔던 유명 트럼펫 연주자이다.

아니 그렇게 추정한다.

외국으로의 여행도 자유롭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잔상이 여전한 소도시에 모인 인간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표출된다.

하룻밤 뜨거운 열정이 임신이라는 악재가 되어 돌아왔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트럼펫 주자 클리마.

빛나는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끊임없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신경증 환자 카밀라 클리마.

자유로운 국가로의 탈출을 위해 나이차가 나지 않는 미국인의 양자가 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의사 슈크레타.

슈크레타의 친구이며 혹독한 정치 탄압의 피해자였던 야쿠프와 그의 또다른 친구의 딸인 올가.

 

 

잘 포장된 아니 잘 포장되어져야 하는 사회의 일원이라도 되는 양 잘 무장되어졌던 사람들의

내면에는 폭발되지 못한 억압과 열정이 숨어 있었다.

핍박에 견디지 못하고 숭고한 죽음을 택해야 할 어느 날을 대비하기 위해 받아 두었던

독약 몇 알을 되돌려 주기 위해 친구 슈크레타를 찾아온 야쿠프는 며칠 후 조국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날 예정이었다.

굳이 간직해 두었던 독약을 왜 돌려주어야만 했을까.

그 독약은 국가가 지녔던 폭력의 상징이고 자존을 지키고픈 투사의 갸날픈 저항이 아니었을까.

딸처럼 키웠던 올가가 옆방에 살던 루제나를 '지겨운 여자'라고 투정을 부렸을 때,

아니 자신이 좋아하던 개들을 무지비하게 잡아들이는 루제나의 아버지를 보면서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 났을 때 였을까. 아주 우연하게 루제나의 약통에 독약을 섞을 마음이 든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고 해도 스스로 '독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워 자신의 실수를

끝까지 포장하고자 했던 야쿠프는 잠시 멈칫 거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한 채 떠나고 만다.

하룻밤을 보낸 남자의 아이였는지 스토커처럼 자신을 따라 다니는 연하남의 아이인지도 모른 채

새로운 사랑을 꿈꿨던 루제나는 어이없이 죽고 만다.

그녀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작가가 남겨진 인간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잘 무장 되었던 억압이 풀어지면서 보여준 인간의 비겁한 모습들과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장면들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결국 어이 없는 죽음에 책임질 사람들은 없고 모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들인 것이다.

원하지 않는 아이의 아빠가 될 운명이었던 남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침대로 돌아갔다. 모두 그렇게 자신들의 안전한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이끌어온 수많은 인간들의 보편적인 삶인 것을. 그 삶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한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