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면 걸어라 - 혼자 떠나는 걷고 싶은 옛길
김영재 글.사진 / 책만드는집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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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너절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확장이요 푸른 돛을 달고

나의 한 가운데로 걸어가는 영혼의 항해입니다.'라고 어느 작가는 말했다.
어디를 떠나든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내 자신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넓지 않은 조국, 나의 땅을 오롯이 제 발로 걸으면서 작가는 누구를 만났을까.
월간지 '현대시학'에 연재되었던 옛길답사기를 모아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어느 독자의 말처럼 "그곳을 걷는 것은 등산이지 어디 옛길이냐!"는 항의를 받았을 만큼
우리의 옛길은 산길과 닿아있었다.
하기는 국토의 70%가 산인 나라에서 편평한 길이 몇 곳이나 되겠는가.
 

 
'길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걷는 사람이 그 길을 걷고 싶어
걸었을 때 길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숨 쉬며 말을 섞으면 마음을 나누며 이어지는 것이다.' -205P
 
앞서간 누군가에 의해 길이 만들어지고 그 발자욱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었으리라.
그 길에서 우리는 과거의 누군가와 만나고 시간들을 만나고 서로 속삭이게 된다.
제주 올레길을 선두로 전국적인 걷기 열풍이 몰아쳐서 일까 이미 지워진 길을 복원시켜
과거의 이름을 붙여 살려낸 길들도 꽤 많아졌다.
문경새재의 흙길처럼 맨발로 토닥토닥 걸으며 땅의 지기를 받는 길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이미 덮어버린 아스팔트며 시멘트에 말끔히 단장된 길이라도 어떠랴.
그 길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길위의 보헤미안들이 있으니 숨었다고 잊혀지는 법은 아니다.
귀를 닫고 마음을 열어 느끼고 싶다가도 아는게 병이라 길위에 새겨진 사연까지 들여다 봐야 하니
예사 여행은 아니었겠다.
마의 태자가 망국의 한을 씹으며 넘었다는 하늘재, 어찌 그 높은 곳에 장이 열렸는지 신기하기만 한
지리산의 장터목,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은거 입산 수도를 했다는 김 구 선생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가 심었다는 향나무는 마곡사의 절터에서 여전히 향을 뿜고 있다고 하니 인간사 백년의
시간이 나무 한그루 만도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르르 몰려가 왁짜하게 흥겨운 여행도 좋겠지만 이렇게 홀로 떠나는 여행은
더 많은 것들을 담아올 수 있어 좋겠다. 아니 더 많이 덜어낼 수 있어 좋겠다.
이미 잊혀진 옛길을 더듬어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그 길에 얽힌 과거의 시간들과 사람들, 그리고 사연들을 이렇게 깊히 들여다 보고
살려냈으니 옛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길 위에 사람들을 기억해준다는 것은 외롭지 않다는
뜻일테니까. 그래서 일까 '외로우면 걸어라'라는 제목을 단 것은.
아무리 외로운들 잊혀진 사람들만큼이야 외로울까. 그래서 여행은 항상 뭔가를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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