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빛깔 - 여성동아 문우회 소설집
권혜수 외 지음 / 예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날 부터인가 전날의 피곤이 묻어있는 아침나절을 지나 이제 슬며시 햇살의

긴장감이 느슨해지는 오후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은 떠오르는 햇살보다 붉은 노을이 더 아름답다고들 한다.

이제 나는 그 느긋한 오후를 지나 붉은 노을을 사랑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조각보를 이어갈라치면 모서리에 헝겊을 맞물리는 일은 중요한 부분이다. 한 모서리가 빗나가기

시작하면 전체는 그만 실그러지고 만다. 지금 모퉁이에서 길을 잃은 이 순간의 자신처럼,

또한 매일 살아야 하는 삶과도 같았다.'-140p

 

'캠던가의 재봉틀'-(조양희)은 거리에서 주운 재봉틀에 묻어있는 과거의 잃어버린 조각들이

우연히 만난 입양아출신의 한국여인과 맞추어지면서 비밀스런 아쉬움을 남겨놓는다.

재봉틀로 드르륵 깔끔하게 박아버릴 수도 있는 조각보 맞추기를 한 면과 면사이를 실로

꿰매어 붙이는 것이 우리네 삶 같다고 한것은 실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 헝겊 선의 맞물림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모서리가 뒤틀려 버린 것일까.

다시 뜯어내지도 못한 시간을 바느질 해버리고 말았으니 고운 조각보가 나오기는 애초에

그른 셈이다.

 

 

일찍 등단했지만 결혼하고 아이낳고 정신없이 살다가 이제서야 소설가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김정희작가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 해진다.

글을 써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벌써 그 길을 들어서고 싶었던 내가 불혹을 넘기고서야

느꼈던 애절함을 그녀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로 세로 4개의 조각보가 어느 한 귀퉁이 이지러짐없이 알맞게 서로를 기대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작품집이다.

16인이 말하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겪는 가뭄처럼 목마르고 때로는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때로는 살아서는 가 닿지 못할 지구 저편으로 나를 인도해준다.

각기 지나온 시간들이 다르고 사는 곳도 제각각이지만 문학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대로

전해진 16개의 예쁜 조각보같은 단편들을 보노라니 그녀들이 못다한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