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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신 1 - 그들, 여신을 사랑하다, 개정판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3월
평점 :
대하소설을 쓴다는 일은 능력있는 작가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고증된 사료도 부족했을 것이고 자료수집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백제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설은 거의 확실하다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구다라(백제)의 천민의 딸이 일본의 애첩녀였던 미도리의 딸이 되어 적통인
세자를 제치고 왕이 되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수많은 여자와 즐기다가 성병에 걸려 생식력을 잃은 왕에게 거짓으로 임신하였다고
알린 기녀출신의 미도리는 구다라의 천민녀인 순덕을 아이를 자신의 아이인양 키우게 된다.
자손이 없는 왕을 대신해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가 왕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딸이었던
히미코는 섭정을 하고 있는 대비 수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궁에 입궁하게 된다.
'잊혀진 아이'가 되어 궁안에서 버려진 아이로 살아가는 히미코는 차가운 의지와
인내로 '왕'이 되는 꿈을 놓지 않는다.
왕의 동생인 다카미역시 자신이 가질수도 있었던 '왕'을 자신의 아들인 세자 와타나베에게
물려주기 위해 히미코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히미코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이 물려받을 왕의 자리마저도 히미코에게
넘겨주고 만다. 손에 별모양의 손금이 있으면 천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에 칼로
자신의 손바닥에 별을 그려넣은 히미코의 야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다라의 왕자인 의후는 천민이었던 어머니를 범하여 태어난 서자로서 왕과 세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채 핍박을 당하다가 인질로 잠시 불려온 히미코를 보고 역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세자역시 히미코를 탐내자 구다라의 왕은 의후를 전쟁터로 내보내고 만다.
왜로 돌아간 히미코와 와타나베, 그리고 히미코를 잊지 못하는 전쟁터의 의후의 엇갈린 사랑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히미코는 왕이 되는 조건에 자신의 자손을 낳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궁을
불로 지지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런 히미코를 곁에서 지켜주는 와타나베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히미코는 이복누이 수우와
와타나베를 결혼시킴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접게된다.
왕이라는 명예를 누리기 위해 왕이 되려는 것이 아닌 진정한 왕이 되기위해 자신의 사랑과
목숨까지도 바친 히미코의 일생은 고통과 외로움 뿐이었다.
왕이여 영원하라는 기미가요의 주인공이었던 구다라의 여인 히미코!
그녀는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궁에서 현명하게 처신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가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에게 추앙받는 여왕이 되었다. 마치 하늘에 있는 태양처럼 그렇게 빛나는 왕이 된 것이다.
고대 일본의 전통과 의례, 마쓰리의 풍경까지 되살려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과연 일본사람들이 왕이었던 히미코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인정할지는 모르지만 백제의 왕이
왜의 왕이었던 것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죽음을 예감하고 스스로 숨어버린 히미코의 마지막은 비감하기만 하다. 그녀가 죽자 태양도 몸을
숨기고 온백성은 눈물로 그녀를 추모했다. 사랑했던 남자와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불행한
여자로, 하지만 훌륭한 왕으로 자신의 삶을 다한 히미코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그녀가 통치했던 그 시절의 백성들은 참으로 행복한 백성들이었다.
사랑도 버리고 고독한 삶을 선택하면서도 왕이 되고 싶었던 히미코처럼 우리에게 이런 왕은 왜
나타나지 않는지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