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 배우 채국희의 플라멩코 여행기
채국희 지음 / 드림앤 / 2012년 5월
평점 :
내가 처음 카르멘을 접한 것은 여고 1학년때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공연한 오페라 '카르멘'이었다.
오페라구경은 처음인데다가 가사전달이 분명치 않아 미리 시놉시스를 읽고 가지 않았다면 극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뻔 했었다. 카르멘을 맡았던 여배우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금 뚱뚱했었고
강렬한 빨간 플라멩고 드레스와 머리에 붉은 꽃을 꽂았던 것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뒤 스페인을 여행할 일이 있었을 때 잠시 집시 여자 '카르멘'을 떠올렸었다.
바르셀로나의 어느 뒷골목 플라멩고 카페에서 공연된 플라멩고 춤은 생각만큼 열정적으로 다가오지 못했었다.
강렬한 구두징소리와 기타반주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플라멩고춤을 추었던 두명의 여자 무희는 조금 늙었었고 사랑스럽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직접 자신이 카르멘을 연기한 배우라면 스페인과 플라멩고의 매력이 남날랐을 것이다.
'쿠키'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채국희작가는 비행기승무원에서 여배우가 된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이다.
거의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흐르지않고 고여있는 삶은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신이 들어 무병을 앓듯이 자신의 속에 흐르는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야만 목숨을 이어가는 모양인지
언제가 반드시 스페인에 가서 카르멘을 만나고 오겠다는 꿈을 이루고야 만 그녀의 열정이 뜨겁게 다가온다.
올림픽을 치뤘지만 영어로 소통이 거의 안되는 나라!
세상이 아무리 정신없이 돌아가도 여전히 시에스타라는 낮잠시간을 꼬박꼬박 지키는 나라!
뜨거운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기후탓이기도 하겠지만 이른 느긋함속에 '카르멘'같은 열정의
작품이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동물보호론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를 찔러죽이는 투우에 열광하고 광란의 축제가
밤새 열리는 그곳에 작가의 뜨거운 열정이 더했으니 아마 기온이 몇도쯤은 더 상승했을 것이다.
'때론 실수하고 때론 모자라고 때론 흔들리고 때론 부족한 나일지라도 희망을 꿈꾸며
활짝 웃으리라. 조건없이 사랑하리라.' -210p
빨간 세무 구두에 눈이 꽂혀 그 신발이 다 닳을 때까지 플라멩고를 추겠다는 그녀의 다짐처럼
그녀의 신발은 다 닳았을까. 닳아 없어진 징만큼 그녀의 춤은 완벽해졌을까.
신나게 인생을 살고 싶다던 그녀의 열정을 느끼고 싶다면 그녀의 다음 작품을 반드시 봐야할 것이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집시의 삶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녀처럼 카르멘을 쫒아 달려갈 수 없다는 것만 다를 뿐...우리 모두 집시처럼 삶을 살다 갈 것이다.
아마도 내 짐작이 맞는다면 '쿠키'는 또 다른 집시의 삶을 쫒아 지구 끝 어디엔가로 훌쩍 떠날 것이다.
그녀의 속에 숨어있는 뜨거운 열정이 또 어쩌지 못하고 그녀를 이끌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상 '쟁이'의 삶을 살다갈 그녀가 신명나게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다. 떠나지 못한 나는 그녀를 통해서라도
넘치는 '열정'한줌을 훔쳐오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