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남자의 물건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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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물건이다.

'남자의 물건'이라면 기껏 '거무튀튀한 그것'만 생각한다고 나무라지 말라.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상을 할테니.

김교수는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혀를 차겠지만 솔직히

그런 상상을 하라고 재기발랄하게 이런 제목을 붙인 것도 사실 아니오?

 

 

표지의 일필휘지는 소주병에 붙어 자신의 한글 서체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처음처럼'을

쓴 신영복의 글씨란다. 잘 갈은 먹의 검은빛을 좋아했고 대단한 우리의 글 '한글'의 또다른

탄생을 이끌어낸 그의 비범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서체이다.

이 책을 읽고 마침 서평을 쓰려는 순간 TV에 나온 김교수와 맞닥뜨렸다.

그가 좋아한다는 슈베르트의 헤어스타일에 나비넥타이 차림이 과연 자신의 말처럼 '귀족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잘 삐쳐서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는 이어령교수처럼 그 역시 귀여운쪽에 가깝다.

 

 

 

잘 몰랐는데 이 책 말고도 베스트셀러가 많다고 자랑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책을

낼만큼 간이 부은 남편이지만 아마 이 책을 쓴 이후에는 꼬리를 내리고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않았을까.

TV에서 보는 솔직하고 경쾌한 모습 그대로 '남자의 물건'에 나오는 10명의 남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는

리얼하다. 부인 '오은미여사'에게 더 이상 반항하기를 멈췄다는 차범근의 물건은 의외로 소박한 '계란받침대'였다.

나의 우상이었던 그가 낯선 독일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할 때 가족들의 식탁을 지켜주었던 '계란받침대'는

외로운 이국생활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사랑과 소통의 현장을 지킨 증인같은 것이었다.

 

 

힘든 13년의 독일 유학생활을 버티고 독일 대학의 강단에까지 섰던 김교수의 물건은

'만년필'이란다. 어려서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그늘이 싫어 소통하기를 피하기만 했던

그가 박사학위를 받자 금색 몽블랑 만년필로 축하해 주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제 그 만년필을 통해 아버지의 아들과 아들의 아들에게 이어지는 소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렇듯 남자에게는 자신만의 '뮬건'이 있단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같은 위엄을 느끼게 해주는 이어령의 '책상',

번잡한 일상에서 때로 앙금처럼 가라앉혀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는 문재인의 '바둑판'

다시 태어나면 소설가는 하기 싫다는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못생긴 조영남을 얼굴 반 쪽을 가려준 검은 뿔테 안경은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뒤바꿔준

긍정의 물건이기도 하다. 하긴 좌충우돌 말많고 탈많은 연예생활에서 여전히 그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선물한 면도기를 여전히 손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는 이왈종화백에게는

정많고 감수성 짙은 예술가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 고 배웠던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외롭다.

여자들처럼 맘껏 수다를 떨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사는 법도 모르는 그들에게 '물건'은 자존심이고

친구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상이다.

 

 

심리학 교수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외롭다. 어두운 술집에서 폭탄주를 들이키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계속 부추기는 김교수는 정말 외롭지 않을까.

오십줄에 들어선 그의 얼굴에도 슬쩍 바흐의 첼로곡 '아리오소'의 흐느낌같은 연민이 느껴진다면

'욱'하는 그가 또 화내며 달려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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