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 내 인생 - 이 시대 최고 명사 30人과 함께 하는 한 끼 식사
신정선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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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명사들이 그리워하는 음식은 과연 무엇일까.

부유한 어린시절을 지난 행운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난하고 지단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꼽는 음식들은 푸짐하고 화려한 음식들이 아니고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그들의 영혼을

채워주었던 소박한 음식들이었다.

전라도 정읍인 고향인 신경숙작가가 꼽은 깻잎짱아찌나 여수가 고향인 사진작가 배병우씨가 꼽은 민어찜,

어질어질 황홀한 냄새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는 이진우시인의 뽈락구이같은 음식에서는 고향의 내음이

듬뿍 묻어있다.  칠성급 호텔의 주방장까지 지낸 에드워드권은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어린시절 가출과

방황을 거듭하다 터미널 근처 에서 만난 순댓국 한그릇으로 가슴이 뜨거워져 바로 집으로 되돌아 왔다고도 했다.

유학시절 고국을 그리워하다 만난 이원복화백의 돈가스며 황주리화백의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그리움이

듬뿍 담겨있었다.

 

'제 추억의 농축액은 짜장의 색깔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움을 섞어서 고독을 비볐을 때 제대로 윤기가 반짝이는

물감이지요. 세상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그 물감을 입고 저의 그림은 추억으로 젖어갑니다.' -110p

 

누구에게나 애틋한 추억이 어려있는 짜장면 곱배기가 버거워질 때 문득 나이가 들었다고 느꼈다는 박찬일작가의

말에 절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 그마저도 버겁다고 도리질을 하는 위장과 타협해야 하는 나역시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곱배기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콩국 한 그릇에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무거움을 이해하고 수수부꾸미의 달콤한 맛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는

이사람들의 특별한 감성에 목이 메인다.

나에게 특별한 음식은 무엇이었던가. 열 서너살때쯤 뽀빠이 만화영화가 방영되는 일요일 아침.

또각 또각 도마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구수하게 코끝을 간질이던 냄새.

국물이 넘쳤던지 연탄냄새와 어우러져 풍기던 동태찌개의 냄새에는 가난한 어린시절 평화로운 아침의 넉넉함과

그뒤에는 많이 누리지 못했던 단란한 가족들의 아침밥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각인되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음식이건만 누구에게는 눈물이고 그리움이고 삶을 지탱해준 기둥같기도 한 무엇인 것을.

 

'맛이란 것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은 없는 거에요. 제가 지금 팥칼국수를 얘기하고 있지만, 팥칼국수를

중심으로 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부재의 기억과 냄새를 말하고 있는거죠. 맛이든, 기억이든, 냄새든, 추억이든

절대적으로 존해하는 건 없어요. 우리가 어떤 음식의 맛을 얘기할 때는 언젠가 누군가와 먹었던 그때 그 맛을

찾는 것이지. 지금 실재하는 맛이 아닌거죠. 다시 떠올리면서 되살릴 수는 있지만 그 맛은 없는 거에요.' -278p

 

연기든 사업이든 어느 분야에 정상에 섰다는 명사들이 말하는 최고의 음식은 모두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있다.

이제는 뒤를 돌아봐도 좋을 나이에 서서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것은 지나간 시간들속에 서있던 나 자신이 아닐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속에 다시는 먹을 수 없는 그 순간들의 음식이 그립다는 건 우리가 늙었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기자로서의 날카로운 눈으로 골라낸 명사들의 음식이야기속에는 다양한 삶을 모아 다듬고

펼쳐 단아한 접시위에 올려놓은 맛깔스런 인생이 녹아있다.

아 그립다 그시절...나도 맛있다 내인생..하고 말하고 싶지만 돌이켜보니 과이 추천할 만한 인생이 아닌듯하다.

아 여전히 무겁다, 내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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