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있으랴'

세상에는 여러형태의 집이 있다. 열음으로 만든 집, 바나나잎으로 엮은 집, 동굴속의 집,

하지만 자동차 트렁크가 침실이라면 상상을 불허한다.

그 협소하고 차가운 공간이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침실이라니..

개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참 별난 족속들도 다 있다.

일명 '트렁커'족이라고 부르는 호모사피엔스 이후, 가장 기이하고 엉뚱한 종족의 이야기이다.

낮에는 베테랑 유모차 판매원으로 활약하지만 밤이되면 멀쩡한 집을 놔두고 자동차 트렁크 속을

파고드는 여자 이온두!

어느 날 그녀의 차 옆에 공터의 주인이라는 '름이 이사온다. 이 이상한 트렁커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인연이 이끈 이들의 만남은 '치킨차차차'라는 게임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며 숨은 기억들의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

 

 

'온두'과거를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짧은 단편적인 조각들만 기억하고 있다.

'름'은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손가락을 잘리우고 10년이 넘게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인간의 뇌라는 것은 교묘해서 어느 순간 깊은 상처를 입게되면 기억을 지움으로써 아픔을

잊으려는 본능이 있다. '온두'는 어린시절 가족들의 집단자살에서 겨우 살아남아 외로운

시절을 거친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은 짙은 안개속처럼 선명하지 못하다.

같은 '트렁커'족이지만 '름'은 당당히 자신의 상처와 마주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하나 하나 '온두'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치유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렇듯 상처를 받은 두 인간이 상처를 마주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결국 '사랑'이 이 간극을 좁히고 평화를 얻는다. 두려워서 꺼내놓지 못한 과거의 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당당히 맞이 하는 '온두'의 마음에 평화가 스며든다.

 

 

'사람이나 건물이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이 있어요. 그 끌림이 사랑일 때도 있고

증오나 분노일 때도 있죠. 무너질 것들은 서둘러 무너져라' 234p

 

이 세상에 기울림 없는 똑바른 것은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견딜 수 없는 만큼의 기울임이라면 차라리 무너져버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면 될 일이다.

기어이 쓰러지지 않겠다고 바들 바들 떨고 버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울어진 한편을 누군가 버팀목을 대고 중심을 세워준다면...다시 제대로 된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온두에게 름이...름에게 온두는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세워준 버팀목이 된다.

다소 엉뚱하고 비현실적일것 같은 소재에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의 눈썰미가 예리하다.

뭔 말도 안되는 트렁커족이라니..하지만 어쩌면 여행용 트렁커나 장롱속에서 안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말 없으란 법은 없다. 마치 자궁에 잉태되어 가장 편안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은 인간들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온두가 판매했던 유모차에 태워져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쏘이며 적당히 말랑말랑 해지고 싶지 않은가. 나도 가끔 나만의 트렁커속에서 편히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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