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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영미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누구나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라 상상속에서만 끝날 일이지만 실제 이런일이 일어난 가족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제 막 여대생이 된 딸의 몸속에 살림 9단인 소심한 엄마가 들어가고
아빠의 몸속에는 이미 한번 아빠의 몸속에 들어가본 적이 있는 딸이, 그리고 무사안일을
제일주의로 삼은 회사원 아빠는 엄마의 영이 들어갔다.

복숭아는 예전부터 신령이 사는 도화천에 열리는 과일이라니 아무래도 엄마의 친정에서
보내온 복숭아를 갈아먹은 것이 원인인 듯 싶다.
그래도 사랑에 빠진 딸내미의 입학식날 이런 날벼락이 있다니..딸인 고우메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다. 더구나 이번에 두 번째라니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한 고우메이지만 그래도
첫 번째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제법 프로의 냄새가 난다.
뭐랄까 몸뚱이 뒤바뀌기의 달인?
아버지도 두 번째 당한 일이라 초짜인 엄마보다는 유연하지만 하필이면 살림을 담당하는
엄마의 몸이라니...그동안 빨래한번 널어준 적 없고 아내의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해 준적도
없는 무심한 남편이 과연 제대로 살림살이를 해낼 수 있을까.
당연히 문제가 생겼다. 세탁기와 DVD가 고장나고 식사메뉴라고는 만들기 쉬운 카레와
우유만 넣어 먹을 수 있는 콘푸레이크 정도이니 이건 가족들에게 대재앙 수준이다.
그래도 역시 가족의 힘은 위대했다. 양심을 저버리고 무리하게 이익을 추구하려던 아빠
회사의 위기를 구하고 중년의 나태함에서 해방된 엄마는 과거의 날리던 솜씨를 발휘하여
오랫만에 젊음을 되찾았다. 아..나도 다시 한번 딸아이의 몸을 빌어 이런 시간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잔소리쟁이 엄마였지만 대충 살아가는 아빠같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딸인 고우메는 두 사람의 손을 모두 놓치 않았다. 그게 가족의 힘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때때로 서로가 사랑하고 있음을 잊거나 무관심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되돌아봐야 한다. 늘 그자리에 있을 것 같던 가족이지만 어느 순간 내게
커다란 나무였고 울타리였음을 기억해 내야 한다.
엄마의 몸이 된 아빠가 비겁해지려는 친구의 멱살을 붙잡고 정의를 실천하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배를 잡고 웃고 말았다.
"부인....대체 언제부터...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하셨나요...."
"어머나 세상에. 내가 정말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흥분한 바람에 그만. 죄송해요.
어머나, 넥타이가 돌아갔네. 이를 어쩌나. 다시 매 드릴까요?" -377p
아마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지 않았을까?
"어머나 세상에. 아직도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시나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가족중에 몸을 빌리고 싶은 분이 누구시죠? 연기에 자신은 있으시죠?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강추에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