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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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의 값은 얼마일까.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용화공고 삼학년 태만생군. 한강로 101-9번지에서 이태원으로 지금은 강릉의 어디쯤 헤매고 있겠네.

뭔가 다 알고 있는 척해도 넌 역시 너무 청순했어.

여자하고 잠을 잤다고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니?

세상은 여자의 자궁속보다 더 심오한 뭔가가 있다니까.

 

도대체 이 작가는 왜 어린시절 내가 떠돌던 곳들을 들쑤셔서 나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것일까.

한강로의 그 음습하고 차가운 바람과 이태원 골목을 감돌던 낯선 바람의 냄새를 진정 알고 있는 것 같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지 않고 돌아가고 싶어도 여전히 빚장걸린 그곳들의 그림자를 어떻게 이렇게 잘

짚어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그랬다. 한강의 바람과 재개발의 뒤안길에서 여전히 과거의 찌꺼기들을

간직한 그곳이라면 외로운 소년 태만생이가 태어나기에 아주 그만한 곳이 없었겠다.

 

건설 경기가 바닥을 쳐서 여전히 가난을 떨치지 못하는 미장이 아버지와 잠꾸러기 엄마가 왜 미국행을

택해야 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여전히 드림 오브 아메리카가 있다고 정녕 믿고 있었다고?

그래도 강릉의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고는 정말 믿고 싶지 않다. 차라리 드림 오브 아메리카를

믿어주고 싶다. 그래야 어른 흉내놀이에 빠져있는 태만생군이 덜 외롭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음주로 하여 호적에 남자로 올리는 바람에 자칫 남자의 운명을 살뻔한 이력때문인지

눈매도 가름한 이 작가 조금 수상하다.

왕성한 호르몬의 공격에 휘둘리는 소년의 육체와의 전쟁을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이제는 갱년기에 접어든 쭈그러진 아줌마의 몸도 괜히 움찔거린다.

혹시 미미형님처럼 불편한 몸뚱아리에 손좀 댄거 아니요?

분명 제 몸이 겪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은 남자 독자들이라면 금방 알터이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쯤에 서있는 소년들이 시덥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짝퉁이 진짜가 되고 진짜는 쓰레기통에서나 찾아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음을

원망해라. 혹시 만생군이 부모님을 따라 어메리카로 향했더라면 덜 외로웠을까.

 

분명 이태원 짝퉁 골목에서 태만생이나 태주가 은근한 몸짓으로 허깨비세상을 향해 유혹의 눈짓을

보낼것만 같아서 더 슬퍼진다. 가끔 소설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혼동스럽기만 하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았다는 그것처럼 그래도 개떡같은 세상에 만생이가 외치는 한마디는

눈물겹게 희망스럽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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