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상자 꿈꾸는 달팽이
루스 이스트햄 지음, 김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나간 시간 저편에 아픈 기억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치유의 손을 내미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온 가족을 잃고 입양 되어 온 알렉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돌보는 착한 소년이다.

 





 

가끔은 폭력적이 되기도 하고 가족을 괴롭히기도 하는 할아버지와 더 이상 살기 힙들다면 부모님은

요양원으로 보낼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가끔 정신이 돌아오는 할아버지는 유일한 친구인 알렉스에게 집을 떠나기 싫다며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집에 불까지 내는 일이 생기자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보호하기 힘들었던 알렉스는 과거의 기억에 갇힌

할아버지의 과거를 캐내기로 마음먹는다.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속에 사랑하는 형과 아내를 잃고 평생 배신자로 낙인 찍힌 채 자식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온 할아버지의 과거속에는 과연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가족을 죽인 폭도들의 총부리를 피해 동생과 함께 달아나다 물 속에 빠졌던 알렉스는 동생의 손을 놓쳐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도서관 사서인 커비선생님의 말처럼 마음속에 고인 아픈 기억들은 숨기지 말고 꺼내어 치유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기억의 저편에 숨어 버리고 싶었던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전쟁은 파괴와 아픈 기억을 만든다. 그게 승자든 패자든 상관없다. 전쟁에서 승자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에게서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고 얻은 승리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남은 사람들의 삶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비참하기만 하다.

기억을 잃음으로써 숨고 싶은 사람, 밀폐된 상자안에 가둬둔 사람,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위안하는 사람,

누군가 상징적인 사람을 희생양으로 세워 죽을 때까지 복수하려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사실을

묻어놓고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겁내는 권력자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가족들의 사랑앞에서 그 아픔은 결국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전혀 눈물이라곤 흘리지 못했던 알렉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 가슴속에 고였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인간성을 파멸하는 전쟁이나 복수의 엄청난 비극도 가족과 사랑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다는 진리를 또 한번

알게 해준 아름다운 소설이다. 지금도 지구촌 어디선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짐승같은 인간들이

있다면 총알 대신 이 책을 쏘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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