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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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친 나라는 가난과 상처만 남았다.

그 와중에도 부를 축적한 지주들의 악독한 만행에 소작농들의 고통은 극심하기만 했다.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소작료를 빼앗기고 결국 또 다시 빚을 떠안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남의집 머슴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온 복천은 지주의 첩에게 농락을 당하고 머슴살이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던 차에 전쟁으로 세상이 바뀌고 악덕지주와 첩은 사람들에게 맞아죽고 만다.

이제 세상은 공평해지고 가난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불순세력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한 복천은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없는 동안 길쌈으로 자식들을 키워냈던 아내가 병으로 죽고 큰 아들 영기는 가난이 싫다고 집을 떠나고 만다.

복천은 이웃집 소를 훔쳐나와 서울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악덕지주보다 더욱 지독한 현실이 앞에 놓여있음을 알게된다.

약냄새가 풀풀나는 수돗물도 사먹는 서울에서는 지독히 썩은 '서울냄새'가 났다.

사기로 소를 팔아온 돈도 다 날리고 결국 칼을 갈아주는 사람이 되어 서울의 골목골목을 누비게 된다.

그가 만난 고향사람들의 사연도 가슴아프기만 하다. 입하나 덜어주려고 월급도 못받는 식모살이를 했던 처녀는 

남자들에게 몹쓸일을 당하고 결국 사창가의 여자가 된다.

한달에 한번 '희망'을 품고 복권을 샀던 복권집의 여자아이역시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은 아비대신 생활을 책임지고

이 모든 고비를 넘어 이제 좀 살만했던 떡집 여자네는 연탄가스로 온 가족이 죽고 만다.

 



 

복천에게 있어 서울은 가슴속의 한을 칼을 갈아 세상을 향해 비수를 꽂고 싶었던 곳일 뿐이다.

지리멸멸 나아지지 않는 가난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은 비수를 갈듯 '카알 가씨오'를 외치던 복천은

돈을 두배나 번 어느 운수 좋은날 자신의 돈을 훔치는 소매치를 쫓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기어이 다리 하나를 자르게 된 복천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른다.

이적지 살아온 꼬라지가 비렁뱅이 짓이나 진배없었응게로, 아예 목발짚고 제대로 비렁뱅이질을 할수 있지

않겠냐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그래도 남은 자식들 절대 굶겨 죽이지 않겠다는 아비의 말에 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도대체 이렇게 순하고 성실한 복천에게 삶은 어찌도 고단하기만 한 것일까.

지주에게 맞고 텃세하는 놈들에게 맞아 복천의 몸뚱아리는 성한 곳이 없다.

그가 상처투성이의 몸뚱이를 그나마 누일수 있는 곳은 산꼭대기의 허름한

월세방뿐인것을. 그 비탈진 곳에는 영원히 햇살이 찾아와주지 않았다.

 

풍요속에서 빈약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비탈진 음지에서

수많은 '복천'들의 굴곡진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작가는 잠자고

있던 작품을 새롭게 개작하여 세상에 내어 놓을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좋은 세상이 되었다해도 여전히 비탈진 음지에서 세상에 뭇매를 맞으며 살아가고

있는 '복천'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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