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유랑 - 서른 살 여자, 깡 하나 달랑 들고 꿈을 찾아 나서다
윤오순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문득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그래도 학교울타리안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제일 좋았다고 생각했다. 시원치 않았던 선생들도 지긋지긋했던 수학공식도 막상

사회에 나오고 보니 무풍의 안전지대였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하여 등수만 매기던 시간들은 그나마 호강이었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처절하게 도태되어 버리는 냉혹한 현실에서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눈물겹게 세상을 향해 총을 쏘고 방패를 둘러쳐야 하는 걸 알았다면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계속 공부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여자 도대체 왜 무작정 공부가 좋은거야.

그것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수없는 그녀의 유학길이라니..

단순한 어학연수도 아니고 공연예술에 커피유학까지.

죽장에 삿갓쓰고 전국을 유랑했던 김삿갓처럼 공부유랑에 지구가 좁다고

설치고 다니는 그녀라면 아마 팔순에 이르러서도 세상 어디선가 꽤 괜찮은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죽어라 공부를 쫓아 좌충우돌

유학, 아니 유랑을 하는 그녀가 결국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상고를 졸업하고 꽤 괜찮은 여대에 입학해서 전공한 '철학'의 의미도 남다르다.

사실 돈이 될만한 학문도 아니고 집안이 넉넉해서 학비조달도 쉬운일이 아닌 환경에서

그녀가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깡'으로 이국의 담장을 넘고 체제를 부수고 기어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그녀이지만 외로운 유학생활에 지쳐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불조차 켜지 못하는 상가의 구석방에서 눈물로 설움을 달래던 유학생활이 떠올랐다.

문득 '내가 왜 이곳에 와서 이고생을 하나'하면서 내일 당장 짐을 꾸려 비행기를 타리라

다짐했다가도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데..하면서 다시 모질게 맘을 다졌던 그 시간들.

지나놓고 보니 그 어려운 시간들을 지내고 가지고 온 업적들보다 그 시간들을 견딘

내 자신의 대견함이 더 뿌듯했고 이후의 내 삶을 버티는 단단한 초석이 되었음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었다.

 





 

라면 한봉지가 향수병을 달래는 약이 되고 멀건 죽 한그릇으로 웬만한 병은

뚝닥 치료하는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박사'라고 불러준다고 했다.

그 명칭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서 사깃꾼은 되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얼마나 기특한지..곁에 있다면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은 심정이다.

 

서른살!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그곳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이 당당하다.

하긴 테러로 전세계가 비상인 시국에서도 평화의 종을 만들기 위해 탄피를 들고

공항에 들어섰던 그녀에게 당당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가족들의 바람처럼 그동안 못먹었던 우리 음식도 먹고 모국의 정을 듬뿍 느끼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받았으면 싶다. 오순씨! 다음 목적지는 어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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