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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최수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침대'라는 제목으로만 보면 과연 어떤 글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금은 어느 집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잠자리의 가구일 뿐인'침대'를
통해 백여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대 서사시라고 표현하고 싶다.
언젠가 여행지에 찾아든 숙박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을 침대를
보면서 과연 그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작가역시 어느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침대의 특성상 누구인가 침대를 찾아와 주어야 하는데
시베리아의 깊은 숲에서 자라난 자작나무로 만든 주인공 '침대'는 욕망을 지닌
인간들에 의해 수많은 곳을 거쳐가게 된다.
위대한 샤먼 미누의 혼이 깃든 '침대'는 사냥꾼에 의해 항구로 옮겨지고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자신에게 몸을 맡긴 사람들의 지나온 시간들이 그대로 읽혀지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침대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는 인간들에 의해 이곳 저곳으로
옮겨지면서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연인이 되고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한다.
'침대'는 단순한 '침대'가 아니다. 인간의 탐욕을 드러내는 거울이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며 사랑과 미움에 흔들리는 인간 본연의 심정인 것이다.
'침대'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악과 선의 마음을 비춰주면서
스스로 인간이 되기도 하고 신(神)이 되기도 하는 신비의 '침대'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지닌 오욕칠정과 역사를 교묘하게 버물려 놓았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사랑의 결실이 영그는 신성한 곳이기도
하며 끈적끈적한 체액과 욕정이 들 끓는 더러운 곳이기도 한 '침대'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인상깊었던 장면은 서커스단에서 아크로바틱을 하며 살아가는 한 사내의 이야기였다.
스스로가 침대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살아가는 그를 보며 전새의
업을 자신의 몸을 통해 태워버리는 그가 숭고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기대고 잠드는 '침대'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저 나무와 매트리스로 만든 가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침대'가 속속들이 나를 들여다
보는 거울인 것 같아 아무생각없이 몸을 누이기가 두려워진다.
신성한 자작나무의 영이 깃든 '침대'는 아마 지금도 세상 어디에선가 여정을 계속할 것 같다.
여전히 자신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상처입은 몸뚱아리를 질질 끌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