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 가면 마치 자신의 집인듯 편안한 곳이 있고 어떤 옷을 입으면 아주 오랫동안 입어왔던 옷처럼 편한 옷이 있다. 고교시절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출가준비를 했다는 보경스님은 절집이 자신의 집이고 입고 있는 승복이 자신의 옷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의심이나 미련없이 세속을 등지고 절집을 택한 스님의 길은 '지금 가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종교수행을 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독서량을 가진 비범하신 분이기도 하다. 과연 스님이 소원이신 만권의 책읽기를 완성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도출신의 세계적인 종교지도자 라즈니쉬가 평생 10만권을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낮추어 맞췄다는 양이라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이 아닐 수 없다. 이미 5000권은 성공했다니 정말 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스님이시다. 매일 하루 책을 읽는다 해도 27년여가 걸리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가능할 일을 반이나마 이루셨다니 과연 스님의 머리속에는 세상에 대한 의로운 이치를 다 깨우치고 계실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속에 스님의 엄청난 독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미시마 유키오,하루키,가와바타 야스나리같은 작가들을 좋아하는데다 역사와 음식에 관한 책들까지도 모두 섭렵하다시피 하였으니 과연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라는 별호를 붙여드려할 모양이다. '떠남이 전제된 터미널에 우리의 인생도 가끔은 이유 없이 남겨지는 때가 있을까? 문득 돌아보면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하겠지. 그대 어디로 가는가?' -86p 인생의 반을 살아온 나 역시도 이 귀절처럼 인생의 터미널에서 내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문득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걸까? 당나라 왕이었던 대중이 왕이 되기전 조카인 무종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깊은 산속으로 피신하여 만난 황벽선사에게 "스님께서는 예불을 올리는 뜻이 어디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부처에게 집착없이 예배를 올리고 있다는 대답을 듣자 그렇다면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지 않는냐고 반문하자 황벽 선사가 느닷없이 대중의 뺨을 세 대 얻어 맞고야 만다. 대중은 그 일을 잊지 못하다가 왕실에서 대중을 선종 임금으로 추대하자 벽 도인이 자신의 뺨을 석대 때린 것으로 삼생업이 다 소멸되고 왕위에 올랐음을 알고 삼생의 업을 다 끊어주신 위대한 선사라는 뜻의 '단제선사'라는 호를 내리게 된다. 나도 위대한선사를 만나 뺨을 백대라도 맞아 삼생의 업을 끊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봄꽃 보다는 여름꽃이 여름꽃보다는 늦서리에도 꿋꿋이 버티는 황국이 좋더라는 스님의 말씀이 나 역시 비슷한 나이이고 보니 절로 공감하게 된다. 아픈 치아를 주사가 무섭고 병원이 불편하여 미루고 미루다가 견디지 못하고 치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글에서는 스님도 역시 치과 앞에서는 부처님의 공력ㅜ으로도 어쩌지 못하시는구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죄송스럽기는 했지만 그래서 난 보경스님이 옆집 친구처럼 한없이 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 부족한 독서가 민망하게 만든 스님앞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 가는 이 길이 가장 좋은 길이 되기를 기원해 주시는 스님의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