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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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바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비극적 사건은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미국의 뉴욕 퀸즈 지역의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신드롬이라고 불릴만큼 세상을 놀라게 한 이유는 스물 일곱살의 제노비스가 35분에 걸쳐

살인자에게 공격당하는 동안 무려 38명의 이웃들이 그 사실을 알거나 목격하고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도움을 주지않고 방관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줄어들어 자신이 꼭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의 딸이었던 그녀는 식당을 열기위해 바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성이었고 살인자와 그녀는 단지

그 시간에 그곳에서 마주쳤다는 불운 이외에 그녀가 죽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범죄의 조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중산층 거주지역인 퀸즈지역의 주민들은 사실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반드시 그들이 냉혹했다거나 비인간적이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다.

직접 살인의 현장을 목격한 남자는 바로 경찰에게 신고를 하기 보다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전하자

새벽의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애인은 절대 그 일에 휘말리지 말고 곧바로 침대로 가서 자라고 권한다.

이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경찰에 전화를 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처음 공격을 당하는 순간에 그녀의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창밖을 바라보았던 사내가 만약 바로 신고를

했더라면 어쩌면 제노비스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안 범인이 도주하다가 다시 되돌아와 그녀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뒤쫓아가 다시 칼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것은 평범했던 이웃이 결국 방관자 내지는

방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범인 모즐리는 시체애호자이거나 연쇄살인을 즐기는 정신이상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힘없는 젊은 여성이 공격받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것에

더 희열을 느끼고 결국 그녀를 뒤쫓아 자신의 먹잇감을 쟁취했다는 것에 우리모두 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해야 한다.

과연 범인만 정신이상자였을까. 아무리 방관자효과라는 심리현상때문에 등을 돌렸다고 해도 소중한 목숨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곰곰히 되돌아보니 나역시도 살인의 현장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나 아니더라도..'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불운하게 죽어간 제노비스는 범인에게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로부터...그리고 지금도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로 부터

또다른 '제노비스'는 죽어가고 있다.

혹시 비명이 들리는 현장을 외면하고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숨고 싶지는 않은지 모두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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