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인 29人의 춘천연가, 문학동네 산문집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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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대학MT의 도시였고 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도시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그랬을까. 아님 안개와 호수가 강이 있는 몽환의 도시여서 그랬을까.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경춘선의 기차는 이제 더 이상 철로를 달리지 않는다. 춘천까지 전철 복선이 놓여지고

그 곳은 이제 서울에서 훨씬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문인 29인의 춘천연가를 들여다 보니 어쩌면 그 도시

어디에선가 나와 한 번쯤 스쳐갔거나 그니들이 그 곳에 머물러 있을 적에 나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첫사랑의 남자와 청평사를 오르거나 남이섬을 거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춘천역에서 내려 소양강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다시 배를 갈아타고 들어갔던 청평사의 기억은

예전 세 명의 남자와 춘천을 가보았다는 여성작가의 추억담과 겹쳐졌다. 나는 이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이의 절개처럼 오로지 한 남자와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순수하다고 해야할까. 아님

나중에 만난 남자들과는 그 도시를 가지 않는 것으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싶었던지 둘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금은 내 친한 친구였던 여자의 남편이 되어버린 그 때의 내 남자친구와 바로 저 굽어진 길을 내려가 배를 타고

청평사로 올랐었다. 앞서 말한 여작가는 같이 동행한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배시간을 챙겨 다시 되돌아 나가자고 하자

은근히 배가 끊겨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보다 되려 화가나더라고 했던가.  그 곳으로 향하는 배가 하루 몇 편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막배가 끊겼던것 같다.

 

나도 은근히 배가 끊기기를 바랬던가. 아마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 나는 남자친구와 크게 싸우고 들어갈 때는

같이 들어간 기억이 있는데 나올 때는 따로 따로 왔던 것 같다. 무슨 일로 싸웠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그 즈음 유난히 다툼이

잦았었고 아마 그 살벌한 분위기를 회복해 보겠다고 나선 여행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주머니돈을 털어 떠난 여행은

그 유명하다는 닭갈비니 막국수를 먹을 형편이 아니었다. 소양강근처 어디쯤에서 도토리묵에 동동주를 한잔 했던가.

 

과묵하고 내성적이었던 남자친구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왜 우리는 그 때 그렇게 싸웠을까.

이렇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남을 남자였다면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다. 비록 몇 십년 후에 그가 살고 있는 도시에

갔다가 망설이던 끝에 전화한 나를 결국 만나러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복수를 했지만 말이다.

 



 

그 사이 춘천을 몇 번 다녀오면서 나역시 춘천은 늘 그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오년 전쯤 지인들을 쫓아 춘천시내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는 어느 분의 안내로 LP판의 살짝 지직거리는

음악도 즐기고 춘천사람들만 간다는 닭갈비집에 가서 후라이팬에 볶은 닭갈비가 아닌 석쇠에 구워먹는

제대로 된 닭갈비에 식당 앞마당에서 뜯은 오가피잎과 곰취잎으로 풍미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기분좋게

취한 여흥때문이었는지 몇 글자 남겨놓은 글이 있었다.

 

춘천 가는길

 

                                      

 

 

 

안개로 휘감은 경춘가도는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가슴설레는길

 

곱게 보냈던 그니는 어느 하늘 아래서

 

나를 기억이나 할지..

 

 

사랑방을 꾸민 옛친구는 찌그러진

 

프라이드를 몰고 마중왔는데

 

기가 막힌 닭갈비에

 

아직 때이른 곰취나물은 서울 촌놈을

 

살짝 아우리고..

 

 

막배 끊어져라 기원했던 청평사의

 

그배는 아직도 여전해서

 

이제는 딸가진 에미마음

 

예전같지 않은데..

 

 

사랑하는 님의 어설픈 농담도

 

어쩌면 그리 달콤한지

 

챙겨주신 추억 한다발

 

소중히 안고..

 

 

아쉬운 발걸음

 

내내 뒤돌아 다시 옵니다.

 

 

 

 

춘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도시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한 남자의 흔적과 질풍노도의 시기에 문학의 길로 나를 안내했던 작가 한수산이

작가의 꿈을 꾸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는 그 도시 춘천! 사랑의 이별과 추억이 있는 그 도시에

가려면 제발 혼자가지 마시라. 인생을 살면서 치열한 사랑의 추억 한편쯤 남기고 싶다면 제발 혼자가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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