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분석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22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권오석 옮김 / 홍신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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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사물을 보고 듣고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한다. '의식'이란 정의를 굳이 말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정확하게 자기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들. 의심많은 인간들은 '의식'을 통해 믿고 판단하고 대처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의식 되지 않는 어떤 유의 사상도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그 것들은 의식의 영역아래 머무른다고

하겠다.  우리가 이 '무의식'을 인지 하는 것은 직관에 의한 경우나 깊은 사색의 과정에서 '그 것'이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인정하지 않거나 존재 자체를 믿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의식'에 의한 것보다 '무의식'에 의해 더 많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통해 유전적으로 전이되었던 수많은 기억들과 습성들, 그리고 살면서 자신을 지나쳤던 사람들과 사건에

의해 우리는 '무의식'의 창고속에 차곡차곡 무엇인가를 쌓아 놓고 있었다. 의식할 수 있는 것들은 미리 준비를 하거나

예측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살고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그 무엇인가가 때로는 내 몸과 정신을 나도 모르게 지배하고 있었다거나 나의 성공과 실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면

과연 그 존재가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꿈의 일반적인 기능은 미묘한 방법으로 마음 전체의 평형성을 이루게 하는 재료를 산출함으로써 심리적인 평형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꿈은 때때로 어떤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 장면을 보여주거나 닥쳐올 위험에 대해 경고를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사건이나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를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개꿈'이라고

해석되는 이런 꿈들조차 자신의 내면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내 자신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무의식'에 대한 자각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해석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을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꿈은 프로이트가 말하듯이 '인정할 수 없는 소망'으로부터 수면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아니고 프로이트가 꿈의 '변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모든 충동이 무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취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꿈이란 의식에 가깝기 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영역이다.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그리고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무의식과 의식은 하나로 결합되어야 하고 따라서 서로 평행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것들이 서로 떨어지거나 분리되기에 이르면 심리적인 장애가 따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의

상징은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으로부터 합리적인 부분으로 보내지는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자이다. -78p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엄청난 문명과 문화를 꽃피우고

번영을 거듭해오는 과정에서 오히려 '의식'의 세계보다는 '무의식'의 세계가 더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게된다.

뭔가 더 많은 발전을 향해 인간들에게 유전되어왔던 '무의식'의 자산들이 아무래도 긍정쪽에 가까운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므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했던 한마디의 말이나 사소한 행동조차 '무의식'의 표현일 수 있으니 눈여겨 볼 일이다.

그동안 본능에만 충실했던 사람들이라면 합리적인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무의식'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C. G. 융의 무의식의 해석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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