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다 죽으리
이수광 지음 / 창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 사랑하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지만 막상 같이 한 시간보다 헤어져 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정인끼리

평생을 그리워하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만났다면 그건 행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누군가는 행복과 불행은 자신이 느끼는 것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억압된 시대에

태어나 신분의 굴레까지 덧 씌워진 두 남녀의 사랑을 보노라면 통렬한 아픔이 더 많이 느껴진다.

 



 

김려는 당쟁이 극심하던 조선 정조때의 인물로 학문과 사상이 청초하였으나 억울한 모함으로 함경도

부령땅에 배되어 고초를 겪고 다시 진해에 유배되어 오랜 세월 묶인 몸으로 살았으나 부령에서 만난

부기(府妓) 화를 만나 평생의 연인이 되고 그 사랑의 힘으로 평생을 견딘 불행한 선비이다.

 

아니 이 판단은 뛰어난 학재에도 불구하고 관료로 성공하지 못한 점이나 굳이 유배를 가야 할 정도의

죄가 아니었음에도 좋은 시절을 변방의 땅에서 혹독한 시련을 견디어낸 그의 삶의 대부분을 보면

불행하다 느낀 내 느낌일 뿐인지도 모른다. 연애라는 것이 드물던 시대에 부모들이 짝지어준 사람과

혼인하고 아이들을 낳고 평생을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 흔히 자유연애를 했다거나 자신의

모든 불행과 맞바꿀만한 불꽃같은 사랑을 이루어 낸 것으로 보면 그들처럼 행복한 이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유로운 시대에 태어나 구속없는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완성하였더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당쟁의 회오리속에 속해있던 사내와 유배의 땅 함경도에서 태어난 노비의 딸과의 사랑이라면 결코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도 남겠다. 만나야 할 사람을 기어코 만난다더니 북쪽의 끄트머리 땅에 속해있던

계집과 한양 사대부간의 만남은 참 쉽지 않은 인연이다. 허나  두 남녀가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여

신분의 고하로 인해 고작 소실이 되거나 흔히 내연의 여인으로 남거나 화류계에서 나누는 그저 그런

풋사랑쯤이었다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모함에 걸려 결코 살아 오지 못한다는 변방으로 유배가는 것도 기가 막히지만 가고 오는 비용은

물론 자신을 돌보아 주는 사람들에게 때때로 뇌물도 써야했다는 귀양살이의 면목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무슨 꽃놀이가는 것도 아니건만 원한 길도 아니건만 스스로 비용을 대가며 굳이 유배를 가야하다니.

다행히 그 땅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억울함과 외로움을 덜었으니 다행이지만 평생 그 남자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죽는 날까지 수절을 하고 주변 관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연화의 삶은 어쩌란 말인가.

과연 내가 연화였다면 사랑의 기억만을 붙들고 매일 죽음과 만나는 삶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 소설은 김려가 지은 책에 나오는 몇 줄의 시가 단서일 뿐 이 내용처럼 이렇게 절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조선 500년 역사속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사내들이 그랬던 것 처럼

양반과 기생의 그저 그런 연정이었다해도 허난설헌이나 위강보다 뛰어났다는 연화의 재능과 영민함만은

사실인 듯하다. 그녀의 언행을 적었다는 <연희언행록>이 전해지지 못했음을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중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받았다는 <허난설헌>처럼 연화의 이름도 드높았을텐데 말이다.

양반가의 딸이면서도 자신의 한많은 삶을 이기지 못해 숨져간 허난설헌도 그러했지만 시대의 불평등에

어이없이 죽어간 조선의 여인이 어디 한 둘 이겠는가.

 



 

그나마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불꽃같이 살다 갔으니 조선의 여인네치고는 다행일 수도 있겠다.

역사서라는 것이 대체로 경직되어 있거나 사실만을 전달하거나 잘못된 해석으로 뒷말이 무성할 수도 있겠으나

부족한 자료만으로도 이렇듯 아름답게 꽃피워 세상에 내놓았으니 설령 진실이야 어찌되었든 난 김려와

연화의 사랑이 이보다 더 지극하였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율곡이 기생 유지와 한방에 자면서도 동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시대이고 보니 이렇게 가슴절절한 위대한 사랑 하나쯤 살려 놓는 것이

 당쟁과 탄압과 비리로 서글펐던 시간들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연화와 김려가 대에 다시 태어나 사람과 오손도손 아이 잘 낳고 살았으리라 믿고 싶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어디선가 알콩달콩 그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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