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를 떠올리면 돌고래 냄새가 난다고도 하고 흰머리 흩날리는 봉두난발의 형용을 하고 글만 쓰는

사람으로는 아깝다는 동갑내기 공선옥작가의 글이 덧붙여진 '향연'은 최근 내가 본 그의 작품중에서

비교적 밝은 축에 속했다. 그의 고향 거문도에서 생계형낚시를 하며 살아간다는 최근의 작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처럼 입맛다시게 하는 '물고기의 향연'이 있는 가 하면 그전에 쓰여진 이 '향연'은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향연'이다. 바다내음보다는 술내음이 더 짙게 풍기는 이 책에는 그와 무척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문학가중 80%가 시인이라더니 소설가보다 시인 친구가 더 많아보이는데

한결같이 그와 닮은 꼴의 사람들이다. 두주불사 술독을 껴안고 지내는 예술가들의 헛증은 과연 무엇일까.

 


 

그 헛증으로 인해 시도 쓰고 소설도 쓰련만 제 살 갉아먹고 영혼을 휘집어 놓는 그들의 아픔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가난한 부모를 두고 혹은 그런 부모조차 없기도 하고 방랑벽과 역마살이 섞여 어디론가 떠돌고

어디엔가 적을 두고 돈을 벌어온 기억은 거의 없거나 잠깐 있거나 했고 불같은 사랑이 있거나 아예 없거나

한 결코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너무 많이 봐버려서 제 혼마저 들끓게 만드는 사람들이 그를 미치게 할만큼 매혹시키거나 술 뒷바라지에

진짜 미치게 만드는 존재들!

 

정작 그들은 살과 혼을 파먹어가며 미쳐가는데 멀찍이 선 우리들은 그들이 그렇게 지어낸 피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공감하고 위안하고 행복감까지 느끼면서 살아가니 조금쯤 미안한 맘이 드는 것도 어쩔수 없다.

 


 

바다는 뭍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고향이요 안식이고 피난처이다. 하지만 정작 섬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는

고행하는 유배지이고 천형을 치르는 감옥같은 곳이기도 한 모양이다.

언젠가 간 적이 있는 섬에서도 늙은이와 홀아비가 지천인 것을 보면 특히 젊은 사람들과 여자들에게

더 극심하게 느껴지는 곳인 모양이다. 몸과 마음이 병들어 찾아든 이들 조차 바다의 치유로 회복되면

다시 병이 들어 돌아올 망정 뭍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곳!

얼핏 낭만적이고 서정적일 것 같은'서이'란 이름은 사실 하나 둘 서이 너이의 보통명사중에 하나일 뿐이어서

딸 많은 가난한 아버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그이름을  가진  수많은 섬 여자들이 숱하게 떠나왔던 섬!

 

그럼에도 전국 팔도를 떠돌며 품을 팔아 살아가던 작가가 결국은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그 섬에는

가난과 추억과 그리운 사람들 말고도 분명 대단한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만난 버들치 시인 '박남준'을 이곳에서 보니 더 반갑게 느껴진다.

나야 지리산 산골짜기로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찾아드는 여인족에 합류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전화에

녹음되어 있다는 한 마디는 꼭 듣고 싶다.

 

"더운날 집에 있는 꼬추들은 잘 간직하고 있겠지요. 이 더위에 꼬추가 축축 늘어져 떨어지지 않도록

잘 붙들어 매주시기 바랍니다."

 

눈물많고 평생 '네번 반'라는 희한한 별명이 붙어있는 그가 봄이 오는 이 길목에서 어떤 말을 들려줄라나.

 

"벗꽃 본다고 어찌나 사람들이 밀려드는지 내가 여직 집에 도착 못한 것은 길바닥에 갇혀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들 다 빠져 나가는 늦봄에나 도착할지 모르겠으니 너무 기다리지 마씨오. 근데 꽃은 정말 이쁩디다."

눈송이 처럼 휘날리는 벗꽃잎을 맞으러 지리산으로 갈꺼나 아님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피같이 고였다는

섬을로 갈꺼나. 이 봄에 자꾸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