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콩가루가 다 모인 집구석이 있다. 양로원에서 단체 배식을 받고 친구들과 교제하며 살아보는 것이 소원인 여든세 살의 할매와 두번의 동거와 자식들이 있음을 속이고 결혼하여 일생을 허무맹랑으로 일관하시다 이십 오년전 가출하신 할배를 쏙 빼닮아 두번의 결혼과 한번의 동거로 배다른 세남매를 낳으신 아빠, 명문대를 나와 한때는 집안의 유일한 희망일만큼 잘 나갔지만 뇌경색으로 쓰러져 지금은 식충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삼촌과 전문대생이며 스물한 살이지만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기저귀를 찰 수 밖에 없는 오빠와 고삼이지만 대학입시는 꿈도 꿀수 없는 욕쟁이 언니.. 그리고 답답한 현실을 잊고 환상속의 공주가 되기위해 코스튬플레이가 푹 빠져 있는 열 일곱 여고생 권여울이 막장가족의 프로필이다. 식권을 위조하여 팔아먹고 가끔 아빠와 할머니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치기는 하지만 유일한 위로인 코스튬플레이를 하려면 돈이 만만치 않게 필요한 여울이는 혜왕고등학교의 짱인 세바스찬을 좋아하지만 그의 마음은 딴 사람에게 있다. 여울이는 언제나 가출을 꿈꾼다. 아니 충동적으로 나가서 집나간 똥개가 되어 개고생 하는 가출이 아닌 '출가'를 위해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 틈틈히 준비중이다. 추레하게 찜질방이나 청소년쉼터에서 지낸다거나 밤 문화에 빠져 인생 망치는 일에 대비하기 위한 여울이만의 '출가레시피'이다. 아빠의 시원찮은 사업으로 보증금 이천만 원에 월세 백만 원이라는 기형적인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 40평대 아파트는 몇달 째 내지 못한 월세때문에 쫓겨날 위기이고 이제 용돈조달도 어려워 코스튬플레이도 어려워진 여울이는 '출가'를 결심하지만 콩가루 가족들이 먼저 선수를 치고만다. 대학입시공부는 커녕 아빠의 사업에 동원되어 하루종일 컴퓨터작업을 해야하는 언니를 시작으로 병원비가 무서워 치료도 못받고 절망중이었던 오빠에 무위도식 삼촌까지.. 에구 가출하기도 쉬운일이아니다. 댄서 출신의 엄마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지만 여울이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거센 바람으로 콩가루 가족은 모두 흩어질 위기가 되었지만 여울이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당분간 학교를 다닐 수도 없을 것 같지만 일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학원 갈 돈도 모으고 진짜 용기를 내 출가한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갈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제 여울이는 가장이니까. 작가가 세상의 어둠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섬세한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청소년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았다더니 아이들이 세계를 잘도 그려놓았다. 그들의 사랑과 우정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과도기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들. 그럼에도 씩씩하게 삶과 마주하는 여울이를 통해 작가는 희망을 붙들고 싶었나보다. 지금 어디에선가 여울이와 같은 아이들이 힘에 겨운 고단한 삶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어른이란거 책임감만 있고 재미가 없어. 얘들아 흥미가 있는 건 뭐든지 해봐. 그리고 나서 천천히 어른이 돼도 늦지 않으니까." -183p 나도 그들에게 이렇게 도닥거려주고 싶다. 너희가 지나고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중에 알게 될거야. 언제든지 후회없는 시간이 되었기를..기원한다.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