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사유
박기원 글, 김은하 그림 / PageOne(페이지원)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에게 술이 없다면 지금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술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삶에 술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을까.

여기 '술을 마시는 이유'라고 풀이 할 만한 제목을 가진 '음주사유'란 책이 나왔다.

아마 이 저자도 나처럼 술이 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던 모양이다.

 

私有: 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다

思惟: 음주에 대해 두루 생각하다

事由: 술을 마시는 까닭

 

나름대로 '사유'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하고 시작한 '술 예찬론'은 나름대로 '주당'임을 자부하고 있던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뭐 술 좀 한다 하면 이정도는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분당에서 나름대로 조용히 살고 있다는 저자의 호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신적 오르가즘'의 기본은 권위와 의무, 이익에 따르지 않는 호감에 따르는 자발적 소통.

술은 육체적 오르가즘의 밑천이 되지만, 술자리는 고도의 정신적 오르가즘을 위한 놀이터.' -347p

 

왜 술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깔끔하다.

'정신적 오르가즘'을 위해서!!

다행히 정신적 오르가즘은 술이 해결해 주고 있다지만 '육체적 오르가즘'은 어떻게 해결하나.

37살 노총각의 한숨이 느껴지지 않는가. 뭐 저자는 남자니까 그렇다고 치고.

 

귀찮은 일에 말리기 싫어 정신줄 놓는 습관이 있어 일명 '멍'은하씨라고 불린다는 이 여자는 우짜지.

시집갈 궁리는 하지 않고 노다지 술과 노닐고 있다니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기만 하다.

술친구와 그동안 마신 술값이 1억원이라니....그렇게 술만 마시면 '소'는 누가 키울거야!

 



 

그녀가 술을 끊는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된다니 이 기적을 볼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술에 쩔어 택시에다 신을 벗어놓고 내리기는 기본이고 냉장고에 가득 술을 쟁여 놓아야 행복하다는 그녀가

미래의 딸에게 한말씀하시는 장면이 압권이다.

'자고로 술자리는 5차가 기본이다. 1차에서 일어나는 나약함의 가문의 굴욕이요 이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미래의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또 어떻고.

'술은 최대한 많이 드세요. 돈 아깝지 않게...행여나 제 생각 한답시고 촌스럽게 전화하거나 문자질은 하지 마세요.

모냥 빠져요...누구보다 그 마음 너무 잘 아는 저...음주시대 짱 먹었던 여자에요.'

에구 누가 남편이 될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어린왕자가 만난 술주정뱅이는 술먹는 모습이 부끄러워 자꾸 술을 마셨다지.

다음 날 머리는 때리는 숙취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당분간은 마시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 되면 슬슬 술의 유혹이 기다려지는 내가 어찌 이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남자. 술만 잘먹는게 아니다. 그가 인용한 글들이 그가 읽었던 책속에서 나왔다는데..

제법 실한 책들이다. 많이도 읽었고. 영국에서 만난 현지 코디네이터의 남편과는 엉성한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음악취향이 같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이 잘도 맞더구만...그의 음악 세계가 또 심상치 않다.

술을 마시다 죽어간 가수가 이렇게 많았구나. 존 레논과 김광석에 이르기까지...그가 사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술과 친한 사람들 뿐이다.

하기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더라는 한탄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역시 술 못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다. 불편하니까. 나는 레알인데 상대는 빠끔히 나를 들여다 보기만 한다면.

쪽팔리니까.

 

술만 조금 줄이면 혹시 장가를 갈 수 있으려나 싶은 남자와 술은 절대 줄일 생각이 없다는 '멍'여사가 만나

아딸딸하게 만들어진 이 책 제법 괜찮다. '멍'여사 나도 좀 불러줘. 술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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