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인데 천강 만수에 비추어서 천개 만개가 됩니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은 하나지만 동쪽으로 가지고 가는 사람은 동쪽으로 가지고 가고 서쪽으로 가지고 가는 사람은 서쪽으로 가지고 가고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은 가만히 그 자리에 둡니다. (본문 중에서) 월정사는 하나의 달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달을 바라보는 천만, 백만의 중생들은 모두 제각각의 달을 하나씩 눈에 담고 가슴에 담는 다는 말이 이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 가 없다. 그동안 수많은 사상가나 종교인들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한둘 이었겠는가. 우리는 과연 그들의 조언을 어떤 그릇에 담아 어디로 가져왔을까. 혹은 가만히 듣기만 하고 바람처럼 흘려 보내지는 않았을까. 속세를 떠나 불가에 귀의하여 큰 스님들의 시자로 시작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던 원행스님이 강원도 월정사에서 둥근 보름달을 우리에게 실어 보내셨다. 스스로 멍청이라고 명하시고 토닥토닥 전하는 스님의 말씀속에는 산 속에 숨어 스스로를 닦는 행자의 고단한 삶과 모시던 큰 스님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부처를 사랑하면서도 산 속에 들기를 주저하고 악다구니속에 처박혀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는 나의 마음을 헤아려 밤하늘의 온화한 달빛처럼 나를 그렇게 굽어보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램도 저버리고 속세의 속된 인연들을 물리치고 스님이 가고자 한 그 길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외롭고 고단한 여정이었으리라. 한진그룹과 월정사의 인연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화였다. 조중훈회장은 아마 전생에 부처와 깊은 연이 있지 않았나 싶다. 도량을 일으키는 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의 거룩한 불심이 지금 수많은 불자들에게 소중한 도량으로 쓰이고 있으니 극락의 어디쯤에서 흐믓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큰 스님들의 숭고한 가르침이 너무 깊숙한 산속에서만 주저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아쉬웠던 중생에게 이렇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니 눈물겹고 반가운 마음이 먼저 일어난다. 보는 듯 해도 보지 못하고 들었지만 알지 못했던 무지를 깨우치고 눈을 밝혀주시니 감사한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듯 자애로운 미소로 우리 중생을 헤아리시니 그 빛이 수천 수만에게 이를 것임을 기어이 믿게 된다. 속세에서 멍청이조차 되지 못한 채 미물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를 책하소서!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