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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평점 :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작가가 궁금할 때가 있다. 작품 속에 드러난 그림자에서도 조금은 느껴지지만
이렇게 신변잡기속에 녹아난 작품을 보다 보면 만나지 않았어도 마치 오래된 친구같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시간들이 나와 겹쳐지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섬세함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와 어려서 목욕을 같이 한 기억을 소중히 붙들고 있는
모습과 스스로 불효라고 말하면서 무뚝뚝한 아버지와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를 '내게 몸을 주신 이가 오늘도
아프신 것이다'며 애틋함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자식을 두고 늙어가면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
신도시에서 정릉으로 옮겨와 북한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사니 좋고 입에 맞는 연탄구이집을 찾아 단골을 삼았다니
어쩌면 소심해 보이고 까칠할 것만 같은 그가 제법 세상과 잘 소통하고 사는 것 같아 안심도 된다.
전작 '대설주의보'에서 나왔던 오대산의 절과 백담사는 그가 집처럼 편히 여기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토지문학관에서 먹던 막국수의 맛도 궁금하고 후배 작가들을 거두어 먹이셨던 박경리선생과의 추억도 감동스럽다.
그의 말처럼 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순간들이 극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새삼 스럽게 살메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 대해서. 한 순간 한 순간이 마치 축복처럼
다가왔다가 새벽의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감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마다 매순간 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며 우연한 만남에도 저 신비롭고
불가해한 우주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68p
그래서 나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세지를 전해오는 작가들을 사랑한다.
그들과 나도 거대한 우주의 섭리안에 '인연'이란 끈으로 이렇게 만나고 소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가 읽어 왔다는 책중에서는 아쉽게 두어권만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가 고등학교때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는 허윤석 선생의 유두(流頭)는 반드시 읽어보고 싶다. 윤대녕을 작가의 길로 이끈 책일것이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졸렬한 내가 혹시나 그 책으로 하여 문장가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소소한 그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이 나와 그의 간격을 좁힌 것 같아 무척이나 뿌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