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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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도처에 '강남'과 '강북'이 있었다.

부와 권력과 명예가 득시글 거리는 신시가지가 번창할 수록 강 이편의 구시가지의 어둠은 더욱 짙어만 갔다.

그렇게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고 '양지'와 '음지'로 나뉘었다.

이제 인간들은 기능적으로 뚫린 대로를 불철주야로 달려 꿈과 이상을 쫓아 '강남'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들고 있다.

 

이제 전세계의 중심으로 급속하게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 바라다 보일 것만 같은 서해의 'ㅁ'시(市)!

대중국 수출을 위한 제조 공장이 들어서고 공항의 활주로가 만들어지는 그 도시에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시장이 있다. 한 때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혁명을 꿈꾸다가 감옥살이를 한 이력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어느 그물망에도 걸려들지 않는 탁월한 정치 감각의 바탕이 되어주었다.

가장 빠른 시간에 ㅁ시를 거대한 도시로 키운 시장의 앞날은 무척이나 탄탄해 보였다.

퇴락한 도시를 재개발하기 보다는 바다를 막고 땅을 만들어 새로운 시가지를 조성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환영받는 시대에 발 맞추어 꿈의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에 입성하지 못한 미개국민들은

변방인 구도시에 갇힌 채 이제는 쓰레기 매립장과 비환경주의자들의 은신처가 된 그 곳에서 오염과 공해에

찌들어 병든 가슴을 부여안고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던 남자는 '대파'라는 말로 그 말을 대신했고 여자도 '쪽파'라는 말로

화답했던 아름다운 젊은이가 있었다. 비빌 언덕이 아무것도 없었던 남자는 사법고시로 벽을 넘고 싶었지만

결국 젊음을 다 허비하고 나서야 손을 들고 만다. 여고생이었던 소녀는 사랑을 쫓아 그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의 추락으로 함께 ㅁ시의 구시가지로 낙향하고 말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패배를 인정하고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던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접는 것 뿐이었다.

자식에게 만큼은 빛나는 미래를 물려주고 싶었던 여자는 '비즈니스우먼'이 되어 학원비와 과외비를 번다.

 

한 때 정의를 갈망하고 전도 유망했던 경찰이기도 했던 한 남자는 '탁월한 비즈니스맨'인 시장을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어 결국 시장의 강력한 비즈니스의 희생자가 되어 이제는 경매처분만을 기다리는 '횟집'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고독한 '비즈니스 맨'이 되어 버렸다.

 

세상 사는 모든 일이 '비즈니스'라 믿었던 여자와 남자는 몸을 파는 여자와 몸을 사는 남자로 처음 만났다.

변방의 도시에서 허우적거리던 두 사람은 곧 동지가 되었고 공범이 되었다.

그 남자의 자폐아 아들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를 해주면서 여자는 행복을 느꼈고 언제부터인지 '쪽파'를

외치고 싶어졌다.  이미 무너져버린 남편과 버릇처럼 학원과 과외를 오가는 아들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사는 일이 자꾸 험악해진 탓일까. 우리 시대를 이끄는 중견작가들이 일제히 성공지상주의의 세태를 향해

붓을 들었다. '강남몽'과 '허수아비 춤'에 이은 '비즈니스'역시 경제가 최우선이었던 시대의 오류들이

인간들은 어떻게 잠식해 나가는지...실랄하다 못해 날선 비수처럼 날카롭기만 하다.

자본시대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향한 '비즈니스'는 얼핏 타당하고 명분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 서슬에 튕겨져 나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을 딛고 이용하고 결국 내팽겨치는 작태에 울분이 치올라오고 가장 마지막까지 몰린 현실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세상은 풍요로워졌다는데...가난과 절망은 오히려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인간들의 삶에

바이러스처럼 침투해오는 것 같았다. 결국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그 남자의 자폐아들을 껴안는 결말에서는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속된 '비즈니스'가 아닌 잘 생긴 삶을 살것 같아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둔 바다로 떠난 남자가 바닷속이 아닌 그 어딘가에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거라

나도 믿고 싶다. 그래야 이 더러운 놈의 세상을 살아갈 마지막 힘이라도 남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어느 도시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비즈니스'는 무엇에 도달하기 위한 것일까.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몸을 팔아 과외비를 벌어야 했던 여자처럼 나도 '비즈니스 우먼'의 삶처럼 고독해졌다.

 

'내가 맞닥뜨린 오류는 , 그가 세계의 과오를 되돌리려는 야망 때문에 고독할 때, 나의 고독은 겨우 사랑의

갈망을 쫓아온 숲에서 미아처럼 길을 잃고 말았다는데 있었다. 슬픈 아이러니였다. 믿어야 할 나의 조국은

여전히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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