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개정판
셔윈 B. 뉴랜드 지음, 명희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마지막 날 아침! 이 책을 덮으면서 불과 10여시간 후면 다가올 2011년의 시간들은
그동안의 시간들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3년전쯤부터 유난히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안타까운 죽음들이 줄을 이어서 였는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왔던 것 같다.
'죽기전에 해야 할`' 같은 책을 보면서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하고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는 의미있는 주제를 만난 기회였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인간이라면..아니 살아 있는 것들이라면 언젠가 맞닥뜨릴 죽음을
이런 시각으로 씌여진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 자신이 50여년간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아 온 의사이기 때문에 이런 주제의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명예로운 '의사'라는 직업을 사실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보다는 아픈 환자들을 만나고 탄생의 기쁨보다는 슬픈 죽음의
현장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80%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7가지정도의
병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가 죽음의 현장과 얼마나 가깝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전통 유대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 때로는 존엄한 죽음이 과연 고통스런
생명의 연장보다 더 의미가 있는 일인지 고민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고뇌가 깊게 느껴졌다.
사랑했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이모와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환자에게는 냉철한 의사의 모습이었으면서도
정작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에게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후회하면서 이렇듯
죽음은, 아니 고통스런 결말은 죽어간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현대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긴 했지만 의학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수명은 최대 110살까지로
본다고 한다. 우리는 결코 그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 길이 고통스럽지 않고 평안하고 아름답길 바란다.
하지만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실제로 평화롭지 않았다고 했다.
사후세계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육체적인 고통이나 상실감이 없이 고요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죽음에 이르는 가장 마지막의 순간 인체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메카니즘의 발현으로 스스로 고통을 차단하거나 심지어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엔돌핀을 분비한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중요한 질병의 원인 7가지를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육체적인
고통이 없는 질병은 없었다. 죽음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산소의 결핍'에 이르는 길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극심한 통증과 의식불명, 때로는 과연 살아생전 이 사람이 품위를
지키며 살아왔던 신체인가를 의심할 만큼 변해져가는 육체의 극심한 손상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떠났던 온유하고 사랑스러웠던 신사 '필'의
사례였다. 너무나 성실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지나왔건만 어느 순간부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추한 기억만을 남기고 떠나야했던 기록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차라리 한순간에 심장마비로 죽거나 암에게 먹히는 편이 훨씬 나을 듯 했다.
자신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나야 하는
그런 질병에 걸릴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남이 선택이 아니었듯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역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이다.

아흔두 살의 웰치의 치료기는 현대의학과 인간의 존엄성,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긴다. 웰치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수술과 치료로 얼마간의 생명연장이 가능했다.
저자는 당연히 의사의 본분으로서 살아온 동안 건강하게 잘 살아왔고 더 이상의 욕심이 필요없다는
웰치를 설득하여 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후 회복하기까지의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던 웰치에게는
생명의 연장을 얻는 대신 고통스런 시간을 얻었을 뿐이었다.
의사로서 최선의 선택으로 그녀에게 돌려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웰치에게 최고 이익을 주고 싶었지만 '간섭주의'에 말려 들어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다 하는 의문.
바로 그것이 그가 승리자였는지 패배자였는지 판단하기 힘든 딜레마이다.

자연은 자신이 갈 길을 묵묵히 갈뿐이다. 그 자연적인 순환에 의해 우리는 숨을 멈춰야만 한다.
그의 환자였던 로버트처럼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죽기전까지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앞에 이렇게 초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죽음을 보면서 지금의 내 삶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다만 존엄성 있는 죽음이 내게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목숨연장을 위해 그 어떤 기계장치나 CPR을 하지 말라는 유서를 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가슴에 깊히 와 닿는 것은 오늘이 2010년 마지막 날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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