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지옥 紙屋 - 신청곡 안 틀어 드립니다
윤성현 지음 / 바다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남자가 자신은 이성적인 사람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사람에 더 가깝고, 세상일에

치열한 고민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기엔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너무 크다는 걸 깨닫고

감수성과 열정이 미덕이 되는 직업을 찾아 결국 라디오 PD가 되었다고 했다.

전국이 있는 현역 라디오 PD의 수가 오백명 정도라니 라디오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너무 적은수라 놀랍기도 하다.  이 남자처럼 라디오 PD가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여

이직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급격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점 라디오 PD의 설자리가

없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진로수정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단지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남자처럼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맘을 접으라는

조언이 더 적당한 말이겠다. 이 남자가 진행한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없어 '잘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겠지만 틀림없이 제대로 만든 방송일 것이다.

이름의 중성적인 느낌때문에 여자가 아닐까 시작했던 초입에서는 시니컬하고 제맘대로 해보겠다는

우격다짐때문에..아하 고집있는 남자구나..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이남자 웬만한 여자보다 섬세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아직 옛 태를 간직한 부암동에 살면서 고즈넉하고 맘편해서 좋다는 그의 성향에서 아직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골목을 지나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냄새를 맡으며 의외로 소박한 '카레라이스'로 허기진 영혼까지 채우고

아침 빗소리에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일줄 아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를 웃게해줄 유머를 익히고 그녀를 위한 노래를 직접 만들어 들려주고 싶다는 이런 남자가 만든

작품이라면 일단 진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드는 감동이 밑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지금 제 자취방으로 온대요. 청소를 안 해놨는데 걱정이에요'라는 청취자의 고민에..

'피임이나 잘 하시죠' 라고 일갈하는 장면에서는 일순 냉혹해보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군더더기 없고

효율적인 대답인가. 이 대답에 악의적인 독기가 느껴지는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취방까지 찾아온 남자와 우아하게 차만 한잔 마시고 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사고치고 후회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자는데...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일으키고 PD의 자격을 운운

했다니..우주선이 하늘을 떠다니는 세상에..이 무슨 짚신 옆구리 터지는 소린가.

의식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면 죽은 듯이 침묵하는 것이 중간은 간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자신과 대화하는 이 남자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내가 던진 돌로 하여 상처입은 사람들이 없는지를 먼저 헤아려 볼일이다.

이 남자를 깊은 밤 출출해지는 시간에 '심야식당'의 간판에 불을 켜고 배고픈 사람들을 기다리는 맘좋은

식당아저씨로 생각했다면 오산이지만 적어도 뭔가에 허기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따뜻한 남자임은 분명하다. 

 

자신의 인생을 담은 책 한권을 남길 수 있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했다니..이 책으로 남자의 자격은

갖춘셈이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러주고 사랑하는 여자를 웃겨주기 위해 익힌 유머를 써먹을 상대를

만나기는 한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의 허기를 채워줄 사랑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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