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쉬어 가는 길! 시코쿠는 일본 열도 4개 섬중 가장 작은 섬으로 그곳에 있는 88개의 천년고찰을 차례로 참배해가며 하나의 원으로 완성하는 순례길이 있다. 1200년전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 스님이 시코쿠의 해안을 따라 걸으며 수행한 것이 시초가 된 이길은 연간 15만 명의 순례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찾는 동야의 산티아고 같은 순례지다. 이 곳을 걷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끝없는 추락의 끝에 다다른 후에 벼락처럼 정신이 들어 도대체 어느 길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혹은 고단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탈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제발로 걸어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싶어..그리고 지금껏 받아온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에..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이 길에 들어섰다고 했다. 저자인 최송현은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아 그 길로 깊은 산속에 들어 스스로가 자연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산속에 들어갔던 것 처럼 그렇게 시코쿠의 순례길이 접어든 이 작가는 이제 자신이 쓴 이 책이 누군가에게 벼락이 되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순례는 저의 종합병원이에요. 아마도 저는 죽을 때까지 일 년에 적어도 한번은 순례를 다닐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삶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상처받고 가끔은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샹그릴라를 찾아..혹은 부와 명예를 찾아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정작 참다운 자신을 잃어버리고 이정표도 없는 길위에 내팽겨진 것 같은 막막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약으로도 사람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병에 걸려 끙끙거리게 될 때...비로소 시코쿠의 순례길이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 놓았을 때...혹은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보일것 같은 이 길이 나에게도 치유의 길이 되어줄 것인가. ' 순례 길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도장이었고 그 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순례자에게는 안내자이자 사범이자 스승이었다. 날씨, 사람, 하늘, 바다, 풀, 벌레, 이야기, 자동차, 강, 바람이란 이름을 가진.' -254p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던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부처였고 스승이었음을 이제 내가 알겠다. 그가 만난 부처를 나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일본말을 잘해야 할텐데...나는 자신이 없다. 사람의 눈빛을 마음을 읽어내는 재주가 없는 내가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의 뜻을 어찌 읽어낼 것인가. 아니 솔직히 '모기여 자네 집이라는 건가 왜 자꾸 무는거야'하며 툭툭 떨쳐버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난 아직 문명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고 비바람 몰아치는 시코쿠의 순례길에 흰색의 수의를 닮은 하쿠이를 입고 외로움과 싸우며 걸을 자신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 집착과 욕심과 인연들이 너무 많아 나는 속물의 걸음으로 그곳을 걷기가 두렵다. '내 영혼은 홀로 있기를. 침묵하기를. 대자연에 마음을 열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 영혼의 밥이었다. 그것을 통해 내 영혼은 자랐다.' -248p 그의 등을 허락도 없이 타고 앉아 시코쿠를 돌아본 것 만으로도 바다거북의 긴 호흡이 느껴졌다. 거북이는 인간을 용서했지만 나는 여전히 복장이 터지고 분노가 끓어 올라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기만 하고 시코쿠의 순례길은 오늘에서야 내 시야에 들어왔건만 비겁한 나는 짐을 꾸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멀지 않은 시코쿠의 거리감때문에 핑계거리마저 빈약해진 변명을...오다이시상은 용서해 주실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