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결혼한지 4년 늦게 생긴 아이를 위해 한적한 교외의 주택단지로 이사온
남자는 어느 날 부터인가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의 낯선 향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던 어느 날 칫솔을
물고 있는 남자와 마주쳤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제 할일을
마친 다음 욕실바닥의 문을 열고 사라진다.

불경기에 실적을 바닥을 치고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남자는 시말서를 쓰기 직전
업무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과장의 압력에 밤을 세우며 계획서를 쓰는데...
얼마전 지방의 지사에서 전근온 늙다리 사원의 실수로 밤새 작성한 자료가
날아가는데...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 사원은 염려말라며 남자를 안심시킨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어느새 출근시간..계획서를 끝내지 못한 그남자는
과연 해고를 당할 것인가.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을 키우며 살림을 도맡아 했던 한 여자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입에 취직을 했다. 가뜩이나 여성일자리가 부족한
요즘에 남자 못지 않은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젊음을 바쳐 일했건만...어느 날, 불황속에
허덕이던 회사에서는 해고를 통보하고..이제 그녀는 남성위주의 사회에 선전포고를 한다.

직장이 정년을 보장해 주던 시절은 끝났다. 맘에 안들면 옮기면 그뿐인 직장일 뿐.
골치아프게 묶여 일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 그때 필요한 곳에 가서 내 능력을 팔면 더
효율적일텐데...끈끈한 동료의식보다, 강요된 애사심보다...자유를 선택한 그들의 미래는?

구두통을 메고 '구두닦으세요'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다가
누군가 천조각을 구두에 들이대며 구두를 닦아준다면....조심할 일이다.
현대판 구두닦이냐고? 아니 총만 안들었지 신종 '슈샤인 갱'임이 분명하다.
억지로 구두닦은 값을 치를 자신이 없다면 무조건 도망가고 볼 일이다.

표제작 '마루밑 남자'를 비롯하여 다섯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한때 이코노미 애니멀로
불렸던 일본의 패망이후 경제를 이끌었던 일중독자들이 그 모티브이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가난한 가정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배고픈 시절을 이겨낸 후에도 습관처럼 일속에 묻혀 지내고 있을 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밥을 먹이고 부를 얻었던 사람들이 단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소설속의 이야기가 지금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해 일하는 시간도 줄어 들었고 가정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가장이나 오피스맨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이 다섯가지 이야기중에 혹시 내이야기가 있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상사의 눈치를 이겨내면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젊음을 바치고 건강을 바치고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러다가...소외되었다고 느낀 가족들과는 커다란 벽이 쌓이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먹히고 쓸만큼 써먹었다고 느낀 회사에서는 퇴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어디에도 하소연 할곳이 없어 술과 벗하다 보면 어느새 외톨이가 되어버린 쓸쓸한 '나'
만 남아있는 건은 아닌지...말이다.

이 책을 '재미없다'고 하신다면 더 이상 추천해드릴 책이 없습니다. 라고 원서 띠지에 있다는
카피는 단지 '재미'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블랙코미디같은 씁쓸함으로 이해하고 싶다.
자칫 소외되고 도태된 삶으로 막을 내릴뻔 했던 사람들이 기가막힌 반전을 펼쳐 승리를
쟁취하거나 찾아가는 과정이 통쾌하달까.
어차피 인생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기득권자들의 헛점을 찾아내어
교묘하게 역공을 펼수만 있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연맹을 조직하여 반군이 되고 싶어진다.
내가 발 붙일 공간이 좁아질수록 사람 대접 받을 일이 적어 질수록..
'마루밑 남자'처럼 어둠속에 기생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다면 나름의 총을 들고
선전포고를 하고 싶다.
'모두 손들어! 내 젊음과 열정을 먹고 비대해진 권력들이여...아직 살아있는 나의 매운맛을
보여주마!' 동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나에게 연락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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