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창밖에는 잔뜩 몸을 움추린 사람들이 종종 걸음을 치고 있다. 따뜻한 방안에서 바라보는 차가운 거리의 모습은 유리창 두께의 간격보다 멀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는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일 뿐이다. 누구에겐가 겨울은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는 시련의 시간들이기도 하고 하얗게 내려 앉은 눈위에서 짜릿함과 즐거움을 즐기는 스키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어느 겨울 저녁, 한 소녀가 동생 둘을 데리고 자장면 집에 들어섰다. 추위에 빨갛게 얼은 뺨을 가진 큰 아이가 말한다. "아저씨, 자장면 두 그릇만 주세요." 엄마, 아빠도 없이 아이들끼리만 온 식당에서 자신은 배가 아파 먹지 못한다며 두 그릇만 주문한 소녀는 남동생의 손을 꼭 잡아 준다. 엄마, 아빠와 온 또래의 아이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던 아이들에게 주인아줌마가 다가와 묻는다. "너 인혜 맞지? 나는 엄마친구, 영선이 아줌마야." 두 그릇일뻔했던 자장면은 세 그릇이 되고 푸짐한 탕수육까지 아이들의 식탁에 차려진다. 순간 나의 가슴은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기억하는 자장면은 축하와 기쁨의 음식이다.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도 그러했고 풍족해진 지금도 자장면은 부자와 가난의 경계가 없는 추억을 듬뿍 얹은 맛있는 음식이다. 유난히 추운 어느 겨울 저녁...세 아이들이 먹었던 자장면은 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이다. 동생들에게만 먹일 수 밖에 없었던 가난한 소녀의 마음을 채우고 유리창의 두께보다 먼 세상의 일로 지나칠 수 있었던 무심함을 깨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따뜻한 자장면! 창을 열고 세상에 나아가 어두운 거리에서 배고픔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 친구가 되어 자장면을 차려주고 싶다. 차가운 아랫목을 덥히는 연탄이 되고 배고픔을 채워주는 자장면도 되는 '사랑'을 늘 불러일으키는 이철환작가의 따뜻한 감동이 있어 이 겨울도 춥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