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이는 어쩌자고 북풍한설 몰아치는 이계절에 얼음 덮힌 고원으로 나를 이끄는가.

비수처럼 날 세운 눈발이 살을 에이고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먹이를 찾아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어슬렁거리는 그 곳으로 말이다.

 



봤다는 이도 있고 전설로만 전해지는 영물이라는 말도 있는 숫호랑이 '흰머리'가 살고 있고

그를 쫓는 포수 '산'이 억센 개마고원의 산봉우리를 바람처럼 넘나든다는 그 곳...

호랑이를 사랑하고 '산'을 사랑했던 여자 '주홍'처럼 나도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밀림에서는 강한 놈만이 살아남는다. 증오와 원한이 없어도 생존을 위해 상대방의 목줄을

단숨에 끊어버려야 하는 비정한 공간!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의 일부였던 '산'은 흰털을 가진 호랑이 '흰머리'에게 사랑하는 아비의

목숨과 들꽃을 좋아했던 동생 '수'의 팔 하나를 빼앗겼다.

오로지 '흰머리'를 죽이기 위해 7년간을 뒤쫓던 '수'에게 인간을 해롭게 하는 짐승을 잡아

죽이는 일본군 해수격물대의 대장 '히데오'와 호랑이를 연구하는 생물학자 '주홍'이 나타난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짐승을 과연 누구인가?

자신을 암컷을 잃고 새끼들을 잃고 아비의 본분을 지키려는 '흰머리'가 해수(害獸)인가.

순하다 못해 어리석었던 백성들의 땅과 목숨을 찬탈했던 일제가 해수(害獸)인가.

 

기어이 밀림에서 쫓겨나온 '흰머리'와 '수'는 또다른 밀림인 도시, 경성에 다다른다.

산주(山主)이면서 우리민족의 영(靈)이었던 '흰머리'는 이 땅을 빼앗고 혼을 흔들고 있는

침략자 일제와 욕망의 더러운 인간들에게 쫓겨 막다른 곳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흰머리'를 살려 밀림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수'와 '흰머리'와 '수'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주홍',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주홍'을 얻기위해 그들을 죽이려는 '히데오'.

 

 



 

'흰머리'와 '수'와 '주홍'은 모두 외로운 한마리의 호랑이였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먹이외에는 굳이 상대를 헤칠 필요가 없었던 그들에게 더러운 욕망의

총을 들이대지만 않았다면 결코 그들에게 밀림의 무정함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라 법을 어기고 제국의 도시를 유린하는 것은 방치할 수 없습니다.' -2권 371p-

 

일본군 해수격물대의 대장이었던 '히데오'의 이 한마디에 분노가 몰려왔다.

과연 그들이 법을 지키고 도시를 지키고 인간을 존엄을 지켰던 족속이란 말인가.

개마고원의 밀림이 무질서와 혼돈이 아니고 자연과 순리의 공간이었다면

그들이 짓밟았던 도시, 경성이라는 또다른 밀림은 침략과 탄압,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진짜 야수들이

살아가고 있던 공간이었다.

 

경성부청 옥상에서 포효하던 '흰머리'의 외침은 바로 그 어떤 것으로도 멸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그리고 영원히 살아갈것임을 알리는 경고였으리라. 더 이상 '흰머리'는 맹수가 아니고 '수'역시 포수가 아니었다.

영물의 신묘함으로 자신을 죽이려던 혹은 살리려던 '수'를 이끌어 푸른강물에 같이 몸을 던진 '흰머리'는

기어이 '수'와 함께 자신이 살아야 할 땅으로 돌아갔다.

그 어떤 것으로 멸하지 않았음을 개마고원...의 땅에 새기고 무수하게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어느 날!

약속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기위해 오늘도 그 산봉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나는...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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