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음에도 애초부터 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음을 알게되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 해꼬지를 한 적도 없고 큰 소리로 자신을 드러낸 적도 없을만큼 순하게 살았건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억압되고 두드려 맞아서 결국 구렁텅이에 쳐박히고 말았던 한 여자의 고통스런 시간들이 그려져있다. 가난한 노점상의 딸로 자라나 여고를 졸업하고 어쩌면 괜찮은 직장여성이 될 수도 있었고 어쩌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 수도 있었던 여자는 더 이상 길거리에다 좌판을 벌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절망으로 인해 가출을 한다. 얼핏 이 길도 그녀의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들..에 의해 이미 그녀의 삶은 도피의 길로 들어섰음을 알게된다. 아름다운 외모로 모델로 성공할 수도 있었다. 짐승같은 인간들의 탐욕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거대한 괴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변방으로 숨어든 남자도 있다. 차라리 자신이 망가진 삶을 살지언정 괴물에게 먹이를 대주는 순한 백성으로 살기 싫었기 때문이다. 괴물에게 쫓기던 여자와 남자는 기적같은 어느 날 그렇게 만났다. 명품을 사기위해 빚을 지고 자신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고 온 남자들에게 여전히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를 보면서 남자는 절망하지만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어둠을 걷어낸다. 우리는 술을 사고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괴물의 먹이를 충실하게 날라주고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 남자처럼 그 괴물의 존재를 느낀다면 오히려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짓밟히면서 살아온 여자처럼 명품 사모으기에 열을 올리며 도피행각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상처투성이의 여자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임을 남자는 보여준다. 창살속에 갇혀 두려움에 떠는 여자의 지나간 시간들은 남자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거대한 괴물에게 먹히는 것 처럼 보였던 여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있는 힘을 다해 그 자의 품으로 뛰어오리라는 것을 안다. 마술에서 깨어난 여자가 앞으로 걸어갈 그 길에는 그 남자가 언제나 함께할 것임을...그래서 더이상 외로운 삶을 살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