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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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고 무뎌지고 편하게도 되더만, 삶은 살아도 살아도

늘 낯선 길에 들어선 것처럼 맘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그 길 끝에 '목포'가 있다면 나도 영란처럼 닻을 내리고 싶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수저 하나만 얹어 따뜻한 밥을 먹이고 지나온 상처는 굳이 묻는 법 없이

아랫목을 내어주는 곳!  짊어진 삶의 무게가 버거운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온기를

나눠주는 곳! 누구든지 어머니가 되고 남편이 되고 자식이 되어주는 그런 곳!

사랑, 혹은 사람이 그리울 때...나도 목포에 가고 싶다.

 



 

그 시간에 산을 오르지만 않았어도 목숨같았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그 어느날 아침 아무 예감도 없던 그날...길을 나섰던 남편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던,

한여자가 목포에 갔다. 그녀와 피를 나누었던 사람들은 더이상 이세상에 남아있지 않았기때문에,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더이상 그녀곁에 없었기때문에..그녀는 삶을 놓기로 한다.

 

길의 끝이었던 선착장에서 소녀를 만나 '영란여관'에 들어선 것이 새로운 길의 시작이었음을 정작 그여자는

알지 못했다.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운명은 때로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인연들을 엮어 살고 싶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치 그녀가 올 것을 알았던 것처럼 목포사람들은 넉넉한 자리하나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사랑하나만을 붙들고 젊음을 놓쳐버린 여인과 사랑을 놓쳐버려 삶이 헐거워진 사람들이 목포에 모여들었다.

삶을 버리기 위해 왔던 여자에게 밥을 먹이고 사랑을 먹이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에게

여자는 막걸리에 비며 버무린 간재미회 한 접시에 술한잔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고 바로 그런 순간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끝끝내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236P

 

그래서였을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그들이 나누어준 사랑이 바로 그 울컥하는 순간이 되었고

끝끝내 그녀를 살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마음도 울컥...거리고 영란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지도..

 

'사람 마음의 움직임에도 비행기길이나 뱃길처럼 정해진 항로가 있다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243P

 

그러게...정말 그런 마음의 길이 있다면 번민없이 두려움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으련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자는 마음이 집히는 그길을 따라 운명처럼 닿은 목포에서 삶을 되찾는다.

허기진 영혼을 채워줄 바다가 있고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그곳!

꼭 목포가 아니고, 부산이거나 인천이거나 강릉이거나 군산이거나...그 어느 곳이라 해도 상관없다..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나는 유달산 산허리께에만 꼭 있을 것 같은 그네들을 만나기 위해 지금 길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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