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된 미국의 역사는 불과 240여년에 불과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문제가 없는 곳은 없겠지만 특히 미국은 인종편견에 따른
갈등이 심각한 나라였다. 물론 대사건이라고 기록될만한 흑인대통령의 등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겪던 그 시대에는 노예제도에서 벗어난 흑인들이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가장 밑바닥층에서 귄리라고 표현될 수도 없는 삶을 살던
시기였고 여성의 지위역시 미국의 독특한 재판방식인 배심원제도에서조차 배제될 만큼 낙후된
시기였다.
이색적인 제목인 ‘앵무새’는 다른 개체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상징한다.
미국의 인종문제처럼 확연히 드러난 소외층부터 겉으로 비슷한 집단이지만 알게 모르게
핍박받는 계층을 아우르는 흔히 말해 ‘왕따’들을 지칭한다.



미국 남부의 메이콤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흑인이 백인 처녀를 강간한 사건이 일어난다.
여전히 흑인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존재였고 인격을 떠나 모든 백인은 흑인보다
무조건 우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국선변호사로 지정된 핀치변호사는 열 세 살의 아들 젬과 아홉 살 딸아이 루이즈가 있는 홀아비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로 성장한 핀치는 이작품에서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따뜻한 배려를
지닌 인물이다. 아마 작가가 미국의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중심을 세워놓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사건만 아니라면 이웃에 산다는 이상한 인물 ‘부 래들리’정도가 아이들의 초점이 되었을 것이다.
심각한 술주정과 무지로 인해 일곱의 아이들이 있으면서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이웰이라는 인물은
힘든노동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흑인들보다 못난 인간이다.
열아홉살먹은 그의 딸 메이옐라는 폭력과 술주정에 시달리며 동생들을 돌보는 맏언니이지만 학교교육은
커녕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구하고 더러운 물을 마시는 최하류의 생활을 하지만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흑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악녀로 등장한다.
바로 이 이웰 집안의 사람들이 그 대 미국국민들의 사고를 상징하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최하류의 삶을 살면서도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 드는 부녀는
바로 그 시대의 불합리하지만 사회전반에 팽배해있던 수많은 모순들을 대변한다.

미국이 궁극으로 지향해야 할, 하지만 여전히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자유와 진실의 패배는
한창 자라나고 있는 아들 젬에게 큰 상처가 된다.
이 소설에서 젬과 루이스는 바로 이제 세상에 눈을 뜨고 진정한 민주주의 싹과 함께 성장하는 태동의
의미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실함을 가르치던 아버지 핀치의 고뇌에 안타까운 시선과 억울함을 느끼던
젬은 흑인 죄수를 죽이려는 백인 우월자들의 행동에 아버지를 보호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세상과 맞설 수 없는 어린아이임을 느끼고 입을 다물고 만다.
결국 교도소의 담을 넘는 것으로 자유를 얻으려 했던 흑인 톰의 죽음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만 재판과정에서
톰을 죄인으로 몰고 자존을 지키려던 이웰의 엉뚱한 복수심으로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재판에 짐으로써 진실을 외면당했던 핀치판사의 집에 마을 사람들이 보낸 음식이 쌓였던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편견을 부수고 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사소한 이유로 인해 숨어 살아야 했던 ‘부 래들리’를 통해 가해자를 없앰으로써 불평등함과 모순의 뿌리를
잘라낸 것이다. 남편을 잃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자유마저 박탁당했던 흑인 톰의 아내를 도왔던 보안관
테이트는 이 한마디로 모든 사건의 종결을 고한다.
‘아무 이유없이 흑인 청년 한 사람이 죽었고 그 죽음에 책임 있는 자도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묻어버리게 하세요‘

이소설이 인종갈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성장소설이라고 평했던 옮긴이의 말처럼 핀치변호사부터
태동되었던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간평등의 사고가 젬과 루이즈가 겪는 사건을 통해 세상에 눈뜨고
성장해가는 미국인의 사고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로지 이 작품 하나로 숨어버린 작가 하퍼 리가 하고 싶었던 한마디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
이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포인트는 바로 작가의 이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임에도 글을 쓰는 것만이 완전한 행복이라고
말했던 하퍼 리가 가장 최고의 작품이후에는 어떤 것도 그 아래작품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작가가 ‘앵무새 죽이기’가 자신의 최고의 작품임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에 작품을 내놓지 못했음을
이해했던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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