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나는 행복한가? 문득 제목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분명 가난한 어린시절보다 가진 것도 많고 배 곯는 일같은 건 없는데도 가슴에 바람구멍하나가

뻥하니 뚫린 것같이 허리가 꺾이고 휴대폰에 저장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아무의미가

없는 것같은 날들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갱년기가 왔음을 알게된다.

먹을 것이 넘치고 탈 것도 넘치고 볼 것도 넘치건만 으스스하게 훑고 지나가는 스산한 바람같은 것.

 

길바닥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조차 을씨년스런 가을 어느 날!

문득 길을 나섰다가 눈에 띈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그랬었다. 삶이 고단해지고 어디론가 나를 숨기고 싶을적마다 바다를 떠올리곤 했었다.

바다근처에 연고라곤 사돈의 팔촌조차 없으면서도 내 유전자 어디쯤에 남아있는 생명의 기억때문이었을까.

그리웠던 것만큼 가본적도 별로 없으면서도 늘 고향같은 바다가 내 마음속에 출렁거렸었다.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바다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가더라도 회 사먹고 바닷가 조금 걷다가 돌아오고 말지 않나요?'  -책머리중에서-

 

쪽집게 무당처럼 짚어내는 작가의 첫머리글에 바로 백기를 들어야 했다.

다음글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바다란 늘 그곳에 있는 파랗고 거대한 덩어리일 뿐입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앞에서 대책없이 들켜버린 마음속의 바다는 허상이었던 것일까.

 

바다에서 나서 뭍에서 떠돌다가 기어이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는 한창훈작가의 밥상위에는

같이 사진찍고나서 무참하게 먹어치우는건 인간밖에 없을거라는 미안한 마음을 보탠 바다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시장에 가서 흔하게 보았던 삼치며 갈치, 고등어에 병어, 겨울이면 모자란 음식솜씨를

감추어 주었던 김에다 이맘때면 포장마차에서 따근한 국물로 유혹하던 홍합은 응큼한 남자들의 입맛에다

입담을 더해주어 여자들에게 눈총을 받았던 안주거리였는데...작가의 첫작품이 '홍합'이었다니 바다는

그에게 생명만 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거리를 걷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우리는 온갖 추억들을 만난다.

손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서 빌어온 바다것들의 설명은 그의 가슴속에 쌓여있는 추억의 문을

여는 열쇠일 뿐이다. 그가 낚아올리고 썰어냈던 물고기와 술국으로 없앴던 해초에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함께하는 기적같은 확률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했다. 엄청난 숫자위에 1을 얹을만큼 소중한 사람들을 짚어낼 수 있는 작가라면 그의 작품을 읽은

모든 독자와도 기적같은 인연임을 감사하며 겸허해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자신과 이웃의 안주며 반찬거리외에 약간의 채소정도나 바꿔먹는 정도이면서도 생계형낚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도 은근히 바닷사람으로 낚시는 제법한다는 자랑이지 싶다.

생계형이 되려면 허술한 낚시솜씨로는 어림도 없을테니 말이다.

 

낚시가서 잡아온 졸복을 손질하여 탕을 끓여놓고 혹시나 복어 독에 잘못될까 누가 놀러왔다면 먼저

먹여볼텐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음을 한탄하며 우선 한모금 먹고 걸어다녀 보고..별 이상이 없자

반 그릇 정도 먹고 기다렸다는 이야기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독이 있을까 너무 오래 담가둔 탓에 맛이 빠져버린 복어를 두고 좌불안석했을 장면에

검게 그을린 거친 바닷사나이의 자존심은 잠시 외출을 한 모양이라고 흉을 보면서 말이다.

 

허기졌던 마음속이 따뜻하게 채워졌다. 언제라도 거문도 그섬으로 가면 회 한접시에 술 한잔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는 바닷가 친구가 나를 기다려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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