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전쟁후 폐허의 터에서 OECD 상위에 속하는 나라가 되기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60 여년의 시간동안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이루지못한 업적을

생각 하다보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국민임을 감사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베이비붐세대에 태어나 김치국물 흐르는 보리밥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고

등록금 독촉에 학교 가기가 싫었던 기억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암흑의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자유를 성취했던 자부심 있는 세대로서 짧은 시간 우리가

일궈낸 승리에 도취되어 남은 생은 이 풍요롭고 달콤한 열매를 즐겨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한 기업의 도전과 업적을 칭송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나와 상관없는 오점 정도는 눈감아 줄 아량도 있는 산전수전 다겪은 백전노장의 여유랄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는 길거리에 뛰쳐나가 싸워야 할 이유도 없고 혹 있다고해도

이만큼 먹고 살만한데 굳이 피곤하게 따지고 싶지 않은 게으름과 비겁함에 주저앉아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차피 내돈이 아닐 바에야 지가 벌어 지가 쓴다는데 뒤로 빼돌려 땅을 사든 배를 사든

혹여 자식들에게 불법으로 증여를 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세금을 제대로 낸다고

내 주머니 불려줄 것도 아닌 것 같고 어느 시대 누가 되었던 간에 정경유착이야 치유 불가능한

고질병일 될 것임은 분명할 터인데 핏대 울리며 정의를 외친들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임을

이제 나와 비슷해져 버린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이 적당히 눈감고 귀막고 살아가는데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일광그룹의 남회장은 선대 부친이 일군 기업을 이어 거대한 성을 쌓아 '황제'로 군림하는

독재자로서 '문화개척센터'라는 친위대를 만들어 정치권과 검찰, 국세청은 물론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돈으로 매수하기에 이른다.

교묘하게 빼돌린 막대한 비자금은 그들의 미끼가 되고 돈 앞에서는 지식도 권력도 명예도

얼마든지 허물어 질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으로써 정의를 구현해야 할 검사들의 주지육림의 현장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얼마전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검사스폰서사건이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영감님'의 권위와 못된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한심한 작태가 남아 있다니..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라고 자부할 만한 자들의 졸렬함이 충격스럽기만 하다.

 

돈앞에서라면 개처럼 충성하고 허리를 굽히는 인간군상들...그들에게 의리와 양심은 없다.

언젠든지 서로의 뒤통수에 침을 뱉고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이중성과

먹을수록 더 큰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처럼 채워지지 않는 탐욕에 허우적 거리는 더러운 인간들.

 

하지만 작가는 그들보다 더 비겁한 자는 몽상과 환상에 빠져 더이상 분노하지 않은 우리들..

바로 국민, 당신들은 노예다...라고 외치고 있다.

천민민주주의의 안일함에 빠져 더러움을 인식못하거나 혹은 무관심으로 회피하는 우리 모두들..

태백산맥속에 숨겨젼 아픔의 역사를 피처럼 써내렸던 작가가 거대한 빌딩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둡고 질긴 커넥션의 현장을 생생하게 파헤쳤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미래에도 노예들의

주인으로 군림할 그들의 득의만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풍요로운 황금벌판에 두손을 쳐들고 헤실거리는 허수아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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