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의 탄생 - 일본 서스펜스 단편집
사카치 안고 외 지음, 이진의.임상민 옮김 / 시간여행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스릴러에는 아주 독특한 색깔이 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음습하고 어둑한 대나무숲에서 울리는 저주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의 머리를 잘라 교문에 걸어 두었다는 소년살인범과도 같이 경악스럽고 가증스런
범죄의 냄새가 느껴지는 일본 특유의 잔인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려서 할머니에 듣었던 '내다리 내놔'같은 귀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시체의 간을 꺼내 먹는다는 구미호의 이야기 같기도 한 조금 오래된 스릴러 모음집을
보노라니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스릴러를 만난 느낌이랄까.
거의 70~80년전에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스릴러의 날카로움은 무뎌지지 않은 채 여전히
빛난다는 느낌이 든다.



밤마다 몰래 무덤을 찾아 신선한 시체를 먹는 룸메이트의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마치 내가 그 뒤를 밟는 소년처럼 등골이 오싹해져 온다.
그장면을 보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제발 밤에는 업어가도 모를만큼
깊은 잠을 자는 사람이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걸 보면 단지 그 사실을
알았다는 이유로 죽어가야 했던 소년의 운명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밀실살인사건은 스릴러에서 가장 많이 도입하는 주제로서 돈을 받으러온 채권자의 죽음을
파헤쳐가는 '가면의 비밀'은 마치 셜록홈즈의 활약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한여자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두형제의 사랑과 배신, 죽음을 그린 '승부'는 1930년 타고
있던 자동차가 열차와 충돌하여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와타나베 온'의 작품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기법이 놀랍기만 하다.  좀 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애통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들을 쓴 작가들이 거의 단명의 운명을 가진 것도 또하나의 스릴러인것
같다. 혹시 작품속의 귀신이나 살인범들에게 기(氣)를 너무 뺏긴것은 아니었을까.
엄마를 데리고 도망간 숙부를 악마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쇠망치'로 내리치는 공상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일본 특유의 외톨이 은둔형 범죄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또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에 좀 더 과감한 일본인들의 심리까지도.

서구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확실히 색채가 다른 일본 근대의 스릴러를
모은 이 책은 지금의 현란한 스릴러물과는 다른 신파적이고 내면적인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지루할 틈없이 다양한 주제와 색채로 구성되어 있는 스릴러의 단편을 맛보고 싶다면
골라 잡아야 할 책이다. 반나절만에 독파할 만큼 빠르게 읽혀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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