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숲속에 길이 두갈래 났었습니다. 나는 두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바라다 볼 수 있는데 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시가 생각나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으면서 어느새 팔순을 넘긴 작가역시 당신이 지나온 길보다 가보지 못했던 길에 대한 아쉬움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저려왔다. 나역시 당신의 따님쯤되는 나이에 와 있고보니 혹시 이책이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서러움이 갑자기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신의 고향 개성 박적골과 서울의 첫터전이었던 달동네와 돈암동의 기와집을 거쳐 남한산성이 지척이라 좋았다던 송파의 아파트에 이르는 그 여정을 함께 해온 탓이었을게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당신처럼 명절이어도 교통지옥을 겪을 필요가 없는 서울내기이면서도 내 아버지의 고향 이북이 유전처럼 전해져서 일까. 괜히 북쪽하늘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목이 메이곤 했었다. 마흔을 넘어 등단했던 그순간부터 지금의 이책을 읽어왔던 시간때문이었을까. 얼마전 만난 작가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았었다. 자그마하고 고운 자태는 질곡의 시간들을 겪어낸 아픔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번잡스런 만남들이 힘겨울 연세인지라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손수 적어준 책을 가질 수 있는 행운이 믿기지 않았었다. 잔잔하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글을 여전했고 손바닥한 마당에서 질긴 잡초들과 벌이는 전쟁사(?)를 보노라니 잘가꾼 잔디밭을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완전무장을 하고 전투에 나서는 장군의 비장함이 겹쳐져 자꾸 웃음이 나왔다. 다만 운동부족증을 극복할 만큼의 노동이면 다행이련만.. 밑둥까지 잘라낸 목련나무가 제발 장렬하게 전사하여 노인을 겁주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나이쯤이면 어찌 추억할 일이 많지 않겠는가. 여전히 엽렵한 기억력이 늙음을 덥지 못했으니 당신은 내가 기억하는 박적골에도 먼저 가버린 아들에게도 연하이면서도 스승이라 했던 이청준과 무뚝뚝했지만 속정 깊었던 박경리에게도 어쩔수 없이 머물러 있었다. 이길이 아닌 선택이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졌을까. 이승에서는 도저히 해답이 없을 질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길로 하여 내 삶이 즐거웠고 풍요로웠으니.. 못가본 길에 대한 환상은 아름다움으로 남기고 지금의 길이 어쩌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었음을 내 감히 여쭌다면 부끄러워 하실라나.. 나역시 못가본 길이 못내 아쉽지만 이길에서 당신을 만났으니 더이상 미련이 남기지 않기로 한다. ’시는 낡지 않는다. 시간이 지났다고 한물가는 시는 시가 아닐 것이다.’ -216p 노작가여 당신도 그러할지니 오히려 적당히 낡아 편안해진 옷처럼 그렇게 비루한 내영혼을 덮어주는 당신이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