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는 번잡스러웠을 마을을 들어내고 물을 가두어둔 소양강댐은 몇년에 한번쯤

수문을 열고 깊숙히 가라앉은 시간들을 흘려보낸다고 하던가.

지구끝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결 구름속에 이야기들이 떨어져 고이기도 했다가

혹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숨을 놓아버린 생명들의 마지막 숨결이 모여 무거워진 슬픔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기도 한 방울들이 모여 고였다가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그렇게

웅장한 소리를 내며 주체못할 몸뚱아리를 덜어낸다고 하더니,

6년만인가 올 유난히 잦았던 비의 냄새를 미리 짐작했던지 늦장마가 지기 전에 제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1: 일본 도쿄 시부야의 카페에서는 오랜간만의 재회가 반갑기는 하지만 남의 안부나 묻다가

더 할 얘기가 없어져 절박한 심정이 되어가는 짝사랑의 귀재 지영과 무심천재 마코토의 역(逆) 이수일과

심순애전이 연출되고 있다.

'지영씨 가지 마세요. 정말 몰랐습니다. 나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아 이러지마 마코토. 제발!'

나도 외친다. 뭔가에 걸려 부욱 찢어진 그녀의 벨벳자켓이 제발 마코토의 손이기를...

 

#2: 거대한 빌딩안에 있는 여행사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수경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3원칙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남자가 떠나는 일같은건 없지 않았을까. 복종이 운명이라던..그래서 목숨처럼

그것을 따를 것이라고...하지만 그것이 마침내 당신을 헤치는 일이라면 떠날 수 밖에 없었노라고..

노란 포스트잇만 남기고 가버리는 일같은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제발......*찬찬히 생각해볼 것!

 

#3: 우연히 마주칠 확률이 몇만분의 일이라는 연쇄살인범을 만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어버린

은이는 몇백분의 일이 된다는 퀴즈왕이 되고...3년만에 수문장을 연 남자친구를 만날 확률을 모두 곱하면..

살아오면서 지금껏 한게 별로 없는 동국이 이런 확률을 가진 옛친구 은이와 50평 아파트에서 맛있는 저녁과

맥주를 마시고 3년만에 수문장을 여는 행운을 가질수 있다면 뭐 문간방에서 싸구려 차렵이불을 덥게되는

분한 마음쯤이야 바로 접어야 하지 않을까.

 

#4: 매년 10월이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전에 출장왔다가 서울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하이델베르크에 와서 한여자를 만나는 남자가 있다. 18세기에 지어져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호텔에서

그남자는 일곱해째 그녀를 만나왔다. 오래전 레스링스파링을 하다 친밀감을 상실한다는 카푸그라증후군에

걸린 그녀의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어차피 친밀감도 없는 부부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녀역시 망설였지만 결국 오늘도 네카어강변을 걸어 늘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식당

곁의 작은 문을 열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방문의 손잡이를 천천이 돌린다.

그리고..이미 보통명사인 '사람'으로 불릴 수 밖에 없는 한남자가 누워있다.

아 정말 그랬군. 숨이 다해도 자신의 몸뚱아리곁에 혼이 머문다더니..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아무도 모른다.

나역시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그도시에 다시 올것만 같다. 이제 곧 10월이거든.

 

비어버린 둑 너머 다시 인간들의 이야기가 떠내려 올것이다. 온갖 달콤 쌉싸름한 오묘함을 숨긴채.

너무 오래 비밀처럼 묵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털어버리면 오히려 숨쉴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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