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에 손을 씻었다. 얼굴도 씨었다. 아무리 박박 때를 밀어도 하얗게 되지 안는다. 돌멩이로 더 빡빡 문질러 씻었다. 피가 났다. 피는 빨가다. 그래도 까만 건 하야게 안 된다.' -142p 어린 김순자의 일기중에서- 초등학교 2,3학년 아이가 쓴 것 처럼 글씨도 맞춤법도 엉망이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양갈보, 똥갈보, 깜둥이와 붙어먹었다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상처받고 몸도 마음도 피를 흘렸던 5학년 김순자...아니 김찰턴 순자의 일기이다.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 충청도 시골처녀 김아기는 열여덟의 꽃같은 나이에 미국흑인군인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원치않은 임신을 하게된다. 저주의 운명으로 태어난 '김순자!' '검둥이'로 태어난 순자는 운동회날 입을 체육복을 사는 것도 행복하고 놀리는 아이들이 미워서 학교에 가는 것이 겁나지만 영화 '벤허'를 보고 혹시 자신의 아버지가 벤허의 주인공 '찰턴 헤스턴'처럼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상상하면서 아버지를 찾아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꼭 묻고 싶었다. '내가 딸인데 알아보겠어요?' 그때부터 순자는 '김찰턴 순자'가 되기로 했다. 외로웠겠지. 벗어나고 싶었겠지...순자는 아들하나를 낳고 핏덩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집을 나간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손자가 바로 가수가 꿈이고 거무잡잡한 피부가 매력만점인 김민정의 아버지이다. 민정이는 뭉툭한 코가 빼고는 자신의 외모가 부끄럽지 않다. 공부가 별로이긴 하지만 가수가 되는데 공부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하지만 엄마의 얼굴로 모르고 자란 아버지는 상처투성이의 외로운 싸움꾼이 되어간다. 죽음을 앞둔 증조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인 '김찰턴 순자'를 찾기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어려서 이태원에서 성장한 나는 이런 혼혈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마치 민정이 아버지처럼 주눅들고 아이들과 눈도 맞추지 못하고 늘 응달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아이들! 사람들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피폐하게 하는지 어려서는 잘 알지 못했었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그저 운명처럼 검은 피부로 태어났을 뿐인데..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우리는 수많은 다른 민족과 섞여왔음에도..단인민족이라는 허울로 애써 포장해온 것이 사실이다. 몽고와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침략속에서 과연 단일민족의 피로만 우리가 이어져 왔다고 할수 있겠는가. 다문화국가로 진입한 우리나라도 이제 피부로 인간과 인격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 했던 한 여인과 그 자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다행이 멋진 가수 '인순이'처럼 당당하게 세계무대에 서겠노라고 외치는 우리의 '김민정!' 혹시 '김찰턴 순자'를 보신분들은 가족들이 간절하게 찾고 있다고 전해주기를 바란다. 더이상 냇가에서 검은 피부를 피가 나도록 문질러 하얀피부를 갖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당당하게 햇살 가득한 세상으로 나오라고 꼭 전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