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할 때 하는 인사는 나라마다 다 다르다. 단순히 각나라말로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른 것 뿐만이 아니라 헤어지는 느낌을 담은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이별의 인사가 사실은 그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시각으로 이책의 머리말은 시작된다. 중국의 재견(再見)!은 다시 만나자는 의미로.. 프랑스어인 'Au revior'역시 한번 더 만나자는 의미로.. 영어의 Good bye나 스페인어의 'Adios'처럼 신의 가호를 비는 의미로서 작별의 인사는 많은 아쉬움과 기원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작별인사 사요나라는 어떤 의미의 인사일까. 앞에 일어나는 일을 받아, 뒤에 일어나는 일과 연결해주는 접속사 '사라바'는 '그러면, 그렇다면, 그럼'과 같은 의미이다. 이 '사라바'에서 시작된 '사요나라'는 끝맺음이면서도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가득 담은 이별의 인사말이다. 사요나라~ 그럼...안녕히...하는 차마 뒤돌아서지 못하는 주저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 일본사람들의 정서를 보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친절하면서도 결국 속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장막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본인들이 이별의 인사에 '사요나라'를 쓰게된 것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누구나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 자유로울수 없는 인간이기에 죽음에 대한 시선은 무겁고 두려우며 아픔이 존재하는 의식이다. 일본인들의 정서에서 죽음은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간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내일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라는 윤회의 사상에 근접해있다. 지금 비록 이별은 슬프지만 언제가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과 체념이 반반씩 녹아든 사생관이 이별의 인사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한국어의 '안녕히 가세요' '잘가세요'보다는 이별의 슬픔을 넘어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인사말이다. 그래서인가. 유독 죽음에 초연한것일까. 자신의 배를 가르는 극단적인 죽음이나 자살이 유독 많은 것들 보면.. 천상병시인의 말처럼 지금의 삶은 그저 잠시 소풍나온 것이라는 초연함마저 느껴지는 일본인들의 이별관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나로서 나 나름대로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커다란 자연, 대지에서온 존재이며, 그곳에 돌아가는 것뿐....-240p 그저 나 자신은 커다란 강물의 '한 방울'에 지나지 않은 존재일 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그렇게 죽음과 '친숙함'과 '즐거움'을 지닌 일본인들의 사생관과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거듭난 삶으로의 확신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