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하는 속담이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서리가 내릴정도의 한(恨)이라면 죽어서 저승에도 가지 못한 채 귀신이라도 되어 억울함을 알리고 싶을 것이다. 왜 유독 몽달귀신보다는 처녀귀신이 많은 것인지는 이책을 보면 속시원하게 알 수가 있다. 남존여비의 유교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이었던 만큼 여자들의 권리야 말할것도 없고 큰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속에 자신의 의견조차 억압받고 묻어버려야 했던 사연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사랑하는 정인으로부터 혈연인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무시당했던 여인들이 죽음으로써 자신을 대변하고 한스런 모습으로 표출되었던 것이 바로 '귀신'의 형용이었을 것이다. 교육조차 받지 못해 글로써도 남기지 못한 사연들이 그나마 사대부들에 의해 일부 남겨지긴 하였으되 진실로 그네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자는 뜻보다는 이런 일들을 우리가 풀어주었노라 하는 남성우월의 과시의 결과였다고 하니 그또한 가슴아픈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달빛 교교한 밤에 긴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토하며 나타나는 이미지로 해마다 여름이면 TV드라마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처녀귀신'들의 한스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야말로 조선여인네들의 압박과 설움이 절절하기만 하다. 소녀과부가 되어도 재혼은 커녕 정절을 지키기위해 죽음을 강요받는가 하면 대를 잇기위해 씨받이가 되거나 혹은 부처님도 돌아 앉는다는 시앗도 감수해야하고 양반네들에게 성노리개가 되거나 사내들의 억울함을 대신하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니.. 오뉴월 서리가 아닌 폭설로도 풀지못할 한(恨)이 아니던가 말이다. 살아생전 억눌렸던 목소리를 귀신의 몸을 빌려 저승에도 들지못한 한스러움을 풀어야 했던 그녀들의 곡소리가 귓가에 서글프게 들리는 듯하다. 귀신이 되어서도 스스로 복수를 하지 못하고 권력이 있는 남자들의 힘을 빌어야 했던 것은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했던 속박의 사슬이 아니었을까. 이미 이세상의 몸이 아니었건만 혼(魂)마저도 살아생전의 남존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한 가여운 귀신들인 것이다. 속시원하게 복수라도 스스로 해주면 좋으련만..그마저도 허용되지 못했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억눌림에 현대에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했던 수많은 원혼들이 지금은 편히 잠들었을까. 아직 잠들지 못한 '처녀귀신'을 불러 일으켜 못다한 목소리를 전한 저자는 그네들의 영정에 향이라도 피워 불쌍한 넋들을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저 위에서도 여인네의 눈물을 세고 계신다지 않던가. 핍박받고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어느날 귀신과 마주쳐 경기로 비명횡사하는 일이 없도록 넉넉한 맘으로 살아가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