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언제 건너왔는지 기억도 아련했던 유년의 강가에 다시 섰다. 저자의 말대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넜을 그 강가앞에 다시 서니 잊혀졌던 시간들과 친구들과 사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나와 같은 시간대에 유년의 강을 건넌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건넜던 강가의 사물들과 인물들이 모두 친숙하기만 하다. '황금박쥐'의 노랫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은 환상에 취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다 보니 신통하게 가사하나를 잊어 버리지 않았음에 스스로 놀랍기만 하다. 핵무기만 빼고는 다 만들수 있다는 세운상가를 지나 헌책방이 즐비한 청계천을 걸었던 기억도 양갱과 사이다를 챙겨두고 가슴떨리던 소풍전날의 모습도 영판 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비장의 각오로 가출을 결행하여 걸어서 도착했다던 용산역앞은 바로 내가 다니던 여학교앞이었고 박포장기로 날릴뻔했다던 학원비의 종착역 종로2가의 YMCA앞에서 혹시 그와 한번쯤 마주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맞아야 할 이유가 아흔아홉가지였다던 그시절 체벌의 모습도 어찌나 비슷한지.. 마대자루로 엉덩이를 맞던 친구들을 보면서 맞는 아이보다 더 공포스러워 눈물을 머금었던 기억이며 마당 끄트머리에 있었던 변소에서 퍼지던 향긋한(?) 냄새까지도 고스란히 맡아지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한남동에 처음 세워졌던 현대식 마트 한남체인오픈식에 구경같던 일이 떠오른다. 변소가 아닌 화장실을 처음 들어가본 내가 사용법을 몰라 좌식 변기위에 올라타고 앉아 재래식변소체위로 일을 봤던 기억이...그 황당함이 지금도 또렷한데..어느새 우리는 그 유년의 강을 건너 흰머리가 희끗해진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달고나의 명성이 살아난다는 뉴스를 보고 인터넷으로 사들여 놓고 가슴이 설렜던 일도 있었고 어느식당에 가면 알루미늄도시락에 계란을 덮은 도시락을 서비스해준다는 소리에 동창들을 불러모아 우르르 달려갔던 일들...이제 우리는 추억한자락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유년의 강 저쪽의 기억만큼은 나이가 들수록 또렷해지고 이제는 다시 건널수 없는 강이지만 이렇게 그시절을 같이한 동무들의 글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가난하고 보잘것 없을것 같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 어두운 밤 촛불을 밝히고 덜덜떨며 갔던 변소도 사라지고 버튼하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수세식 인생이 되어버린 지금 배고플일도 없건만....왜 자꾸 헛헛하고 공허한 것인가. 오늘....실컷 웃고 그리워하며 읽었던 이 책으로 하여 먼길 떠나기전 해주셨던 엄마의 따뜻한 밥한공기처럼 든든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