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을 들여다 볼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인간의 이런소망을 담은 타임머신이라는 단어가 생긴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바람은 아닌듯 싶다. 편할 날 없는 국토의 상처가 깊어 수많은 유물과 유산들이 소실되지만 않았더라도 우리는 이런 시간들을 많이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풍속화들 역시 외국의 박물관에 소장된 것들이 많으니 조선의 상처가 그대로 느껴져 안타까운 맘뿐이다. 간혹 조선말기의 사진들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온전히 우리 조선민족의 삶이 듬뿍 느껴지는 그림을 만나면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진솔한 모습들을 해학을 곁들여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것 같다. 미술학자도 아닌 한문학자로서의 저자가 들여다본 조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어쩌면 미술학적 지식보다 그동안 조선을 공부한 사학자로서...그리고 슬쩍 한발자국 떨어져 여유있게 바라보는 자연인으로서의 시각이 너무도 담백하고 재미있기만 하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사실 해학적인 부분만을 보고 그냥 지나쳤던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양반에게 핍박받고 가난에 찌들면서도 순종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시간들이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희로애락이야 다름이 없고 빈부가 있다하나 그만큼의 삶의 무게는 다름이 없을터...저자의 설명을 듣다보니 그동안 스쳐지나가버린 몽매함이 느껴져 부끄러워진다. 어살을 치고 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에서, 들판에서 곡식을 추수하고 탈곡을 하는 농부의 모습에서도 나는 보지 못했던 수탈의 역사를 짚어내고 화폐의 기능을 지닌 무명을 짜는 아낙의 모습에서도 한숨을 이끌어낸다. 아 정말 그 참혹한 시절에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화원으로서 김홍도는 단순 사실을 그리는 일이 아닌 조선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고 연민을 느낀 인간적인 사람이었을것이다. 어쩌다 한번쯤은 골통 양반들을 엎어치기 하고 싶었을 심정을 그림곳곳에 숨겨두는 해학으로 멋지게 숨겨두었으니말이다. 저자의 말대로 사진이나 초상화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삶의 애환이 바로 '풍속화'에 담겨있으니 과연 김홍도는 후세에 자신의 그림이 전해질 것을 알기는 했을것인가. 혹은 일본의 화가 샤라쿠라라는 소문이 있기도 한 김홍도의 삶이 확연하지 못하고 곤궁한 말년이었다는데...그의 묻힌 자리는 알지도 못하지만 그의 그림은 이렇듯 후세에 남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때로는 웃기고 있는것에 새삼 삶의 무상을 느껴본다. 시대의 특징과 인물에 대한 특징을 잘 알고 있는 학자가 본 풍속화의 설명이 꾸밈없고 소탈하게 전해져 읽는내내 그의 안목과 연민이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