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을 지나는 선분은 무수하다. 그 점의 의미는 선분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그림을 한 점으로 생각한다면 그 그림의 의미를 해독하는 선분은 무수하다.' 이 책의 머리글에 쓴 저자의 말처럼 점이 선이 되고 하나의 의미가 될 때...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감동으로 전해질 때...단지 그림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외에도 적지 않은 풍속화가 전해진다. 작가의 유명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그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매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의 사람들의 생업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물근처에 살면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요, 들녘이 있다면 곡식을 길렀을 것이다. 지금도 험한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사는 일은 참으로 고단하다. 하물며 쪽배하나에 의지해 거친바다를 의지하고 살았을 조선의 어부들에게는 먹기위해 죽을을 각오해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고기잡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려니와 고시에 소개된 그들의 한숨섞인 싯구를 듣자니 가슴이 짠해진다. 더구나 관청에서 거의 빼앗기다 시피 하였다니 지금이나 예나 있는 것들의 무자비함이 참혹하기만 하다. 가장 흔한 볏짚을 엮어 신을 삼고 자리를 짜고 흙을 빗어 독을 만드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그림속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하긴 뭐하나 내손을 거치지 않고 먹을것이 될 수 없고 살림살이며 옷가지가 될 수 없었던 그시절의 노동이야 짐작만으로도 애닮기만 하다. 하물며 일일이 절구에 벼를 찧고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길쌈을 하던 여인네들의 고단함이야 말할 것이 있으랴. 그저 그시절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할 밖에. 평양출신의 아버지가 왜 그토록 냉면을 좋아하셨는지..냉면의 역사를 짚어가다 보니 이유가 충분하기만 하다. 여름보다 오히려 겨울에 더 즐겼다는 조상들의 입맛마저 고대로 대물림이 되었던가. 사철 언제든지 냉면을 즐길수 있으니 이또한 감사할 밖에. 지금도 개장국은 호불호가 분명한 음식이지만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했던 예전에야 최고의 영양식이 아니겠는가. 어느 해 고미술상에서 구입한 논어, 맹자사이에 발견된 춘화를 보고 누군가 옛날 거룩한 성닌의 말씀을 읽다가, 성인의 말씀이 지루해지면 춘화를 슬쩍 꺼내보았다가 누가 방을 열고 들어오면 접혀있는 책장속으로 슬쩍 밀어 넣고 했을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오고 만다. 하긴 그들도 사람이니 오히려 솔직함이 인간답지 않은가. 단원과 혜원도 춘화를 그렸다니...춘화가 성(性)을 돋우는 그림만으로 간주하기에는 뭔가 심오함이 있지 않겠는가. 혹 이부분은 아이들이 볼까 겁이 나는것도 사실이긴 하다만... 조선의 미인을 상징하는 그림을 보노라면 성형으로 범벅이된 지금의 여인네들이 후세에 어떤 그림으로 남을지..자못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