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본래 길 위의 삶이다. 남편과 아내로, 아버지와 아들로, 아버지와 딸로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고 긴 세월을 함께 했어도 결국은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풀잎 위의 이슬 한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335p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하는 옛노래가 떠오른다. 이승에서의 삶은 잠시 소풍나온 일이라는 천상병시인의 싯구도 떠오른다. 7십평생 희로애락을 느끼고 천상으로 가니 3일도 안되더라는 천계의 이야기처럼 무릇 인생은 책열권으로도 모자랄것만 같은 구구절절의 시간조차 잠깐 머물다가는 바람조각에 불과하다는 말들이 반평생 지나온 내 삶을 돌아다보니 틀린 말이 아닌듯싶다. 중국본토에서 피난나와 타이완에서 삶을 마감한 저자의 아버지의 삶은 우리 아버지의 삶과 닮아있다. 잠시 시장에 다녀오기 위해 나섰던 열여섯 소년은 40년이 넘어서야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고 평생 그리워했던 어머니와는 다시 조우할 수 없었으며 젊음과 열정이 다 빠져나간 가벼운 시신이 되어 고향땅에 묻힐 수 있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얼결에 두고온 한살박이 아들도 만나고 태를 묻었던 고향땅에 다시 묻힐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아버지 역시 평생 두고온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다 가족들의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영혼이 되어서야 돌아갔으니..그에 비하면 저자의 아버지는 그나마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피난민이 되어 외성인마을에서 고향의 사투리를 부끄러워하며 살아가야 했던 아픔과 오로지 자식들을 바르게 길러 고향으로 돌아갈날만을 꿈꾸었던 시간들은 바로 우리아버지의 바램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자식들은 자신의 삶위에 아버지의 꿈을 얹어 늘 바른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저자의 성공역시 그런 바램의 결과이기도 했을것이고. 우리 나이쯤 되면 탄생보다는 죽음을..작별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노쇠한 부모를 삶의 저편으로 보내는 일들과 만나고 이제는 길을 건널때 잡아주던 손을 다 컸다며 뿌리치는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왜 하필 이런 아픔들은 젊음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불면에 시달리는 나이즈음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단련이 되었으니 이겨낼 힘도 같이 견고해졌다는 뜻일까. 한때는 찬란했지만 기어이 서쪽하늘로 사라지는 노을처럼 쓸쓸히 우리는 많은 것들과 작별하는 시간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다가 돌아가는 차를 놓친 시간여행자가 되어버린 엄마를 바라보는 늙은 딸의 모습도 가슴아프다. 어린아이가 숨바꼭질하며 웃고, 부엌에서는 생선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집으로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서서히 흐려지는 기억만 남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흰머리수가 늘어나는 만큼 떠나는 사람들과 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 잔소리로 나를 깨우는 부모님도..매를 들어 울릴 아이들도 떠나고 밤을 새워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도.. 어제까지 밥을 나누어 먹었던 이웃들도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이 드물지 않게 들려온다. 연습이 되지 않는 슬픔이 아무렇지도 않을 나이가 되면 그때 나도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겠지. 앞서간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밤새 웅크리며 모아두었던 물방울들이 아침햇살에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인생인것을.